8월 첫날입니다. 8월의 무더위도 말씀묵상과 함께 시원하게 물리치시길 빕니다.
오늘 비유를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에 대한 비유를 마무리하십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존재하는 하늘 나라입니다.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 13,47)
그런데 특정 종류의 고기 떼를 겨냥하지 않고 무작위로 친 그물이기에 온갖 고기가 다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하늘 나라를 빗댄 도구라면 애초에 고기를 잡을 때부터 좋은 것들만 골라서 낚시하듯 잡아야 할 것 같은데, 그물이다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좋은 것, 나쁜 것 구별 없이 다 끌어모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이 상태는 "아직" 완성이 아닐 겁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와 있는 하늘 나라이지만, "아직" 완성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마태 13,48)
그러니 잡힌 고기의 종류와 상태, 쓸모에 따라 선별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좋은 것, 나쁜 것이라 표현했지만, 합당한지, 적합한지, 유용한지, 건강한지 등 그 기준은 어부들이 가장 잘 알겠지요. 바로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하늘 나라입니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마태 13,49)
의인과 악인을 가리는 이 선별 작업은 신중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손을 쓰기도 전에 어쩌면 악인들 스스로 자기의 모습을 깨닫고 자청해 "밖"에 자리잡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도 불구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의적으로 악을 고수해온 이라면 하늘 나라에 모인 의인들의 무리가 낯설고 시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같이 살 생각을 하면 지루하고 따분하고 역겹기까지 할 테니까요. 또 하늘 나라에 대한 갈망이 애시당초 없었기에 꼭 의인들 무리에 들겠다는 욕심도 없을 겁니다.
그들을 선별하는 천사들에게는 좋고 나쁜 기준이 선명하지만, 이미 그들은 좋고 나쁨의 기준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이들이니까요. 지상 삶을 살아온 모습과 방식대로 안이든 밖이든 비슷한 무리 곁, 제 자리를 찾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13,50)
악인들이 던져진 곳이 불구덩이라서 울며 이를 가는 건지, 그곳이 어디건 그들이 울며 이를 갈기에 불구덩이라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세상 종말에 하늘 나라에서 제외된 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하늘 나라가 아니라서 불행하고, 불행해서 하늘 나라가 아닌 겁니다.
이렇게 하늘 나라에 대한 비유를 마치시고서 예수님께서는 덧붙이십니다.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마태 13,52)
율법 학자라면 옛 계약과 그 규정에 정통한 이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새 복음, 하늘 나라의 신비를 받아들인다면 더 바랄 것 없는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옛 계약이든 새 계약이든 그 안에 관통하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옛것과 새것, 어느 것도 부정하지 않기에 그의 안에서 진정한 통합을 이루었고, 제 지혜의 곳간에서 자유자제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끄집어내어 음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미"를 디딤돌 삼아 "아직"을 향해 발돋움하며 예수님의 비유들을 깨닫습니다.
제1독서는 만남의 천막, 성막의 이야기입니다. 드디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한가운데 현존하십니다.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탈출 40,16)
하느님께서 백성들 안으로 들어오시는 일은 모두 모세의 철저한 순종으로 이루어집니다.
비슷한 표현이 19절, 21절에도 반복되는 걸 보면 당신 백성과 함께하시려는 주님의 의지가 얼마나 구체적인지, 또 그 실현을 위해 인간에게 얼마나 큰 겸손과 순종이 요구되는지 알겠습니다.
"그 모든 여정 중에..."(탈출 40,36.38)
두 차례나 반복된 이 말씀은 하느님의 충실성, 변함없는 현존을 보여줍니다. 긴 광야 여정 동안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이스라엘 자손을 동반하고, 그들은 앞길을 온전히 주님께 맡긴 채 구름의 움직임을 신호 삼아 머무르고 나아갑니다.
이처럼 한덩어리가 되어 동행하는 건 서로 믿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광야길은 상호적 충실함과 신뢰를 요구하지요.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이미" 와 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늘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광야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의 무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만남의 장막이 아니라 "성체로, 말씀으로" 현존하시는 주님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주시하며 머무르고 나아가는 사이 우리는 진정한 "주님의 뜨락, 하느님 집"(화답송)에 가 닿을 것입니다.
우리를 신뢰하시는 그분께서 충실하시니, 우리도 겸손과 순종으로 따릅시다. 하늘 나라는 장소나 제도를 넘어서,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모든 곳입니다. 오늘도 벗님이 머무는 곳에서 하느님과 함께 함으로써 하늘 나라를 만끽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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