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여라"(루카 10,2).
가장 먼저 준비할 것은 기도입니다. 그들이 사람의 일이 아닌 하느님의 일로 파견되는 것이니까요. 물론 함께 가는 둘 사이의 팀웍도 좋아야 할 것입니다만, 무엇보다 각자 하느님과 갖는 관계성이 선교의 질은 물론 공동체의 분위기를 좌우할 것입니다.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루카 10,5).
복음 선포자는 평화의 전파자입니다. 그런데 먼저 그 자신이 평화여야 하지요. 그는 스스로 포기한 잉여분의 돈주머니나 여행 보따리, 신발 따위로 신경이 곤두서거나 불안하거나 강팍해지거나 인색해지지 않습니다.
더우기 길에서 사람들과 긴 인사를 나누며 인맥을 쌓고 뒷배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하느님께만 의탁해 가다보면 필요한 순간에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 주실 것이니 인간적으로 보루를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이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루카 10,6).
빌어준 평화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튕겨 나올 수 있지만, 평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평화는 고스란히 복음 선포자에게 되돌아 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역시 그 평화를 받을만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도 되겠네요. 그러니 복음 선포자가 먼저 평화의 존재여야 할 것입니다. 평화를 빌어주기 마땅한 이, 평화를 받아 머무르기 마땅한 이여야 합니다.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루카 10,7-8).
복음 선포의 길에서 마주칠 일은 그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통해 복음을 접할 이들은 물론 복음 선포자의 구원을 위해서 마련하신 섭리가 다이나믹하게 휘돌고 있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받아 먹는 음식이 구미에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도 맛깔져서 은총이라 여기는 것도 있겠지만 쓰디쓴 도전과 실패처럼 뱉어내고 싶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 파견받아 나선 여정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그분이 차려 주신 상 위의 모든 일이 복음 선포자를 성장시킬 양분이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루카 10,9).
가까이? 분명 "가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만큼 "가까이"일까요? 꼭 세상 종말이라는 공적인 하느님 나라의 도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이 "가까이"의 거리는 사람마다 천편일률적으로 같을 수 없을 겁니다.
겉보기에 거룩하고 행복한 삶을 택한 것 같은데 정작 지옥에 사는 듯 고통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기댈 곳 없고 가진 것조차 빈약해도 이미 하느님 나라를 선점해 누리는 이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작 복음 선포자가 하느님 나라와 어떤 거리를 유지하고 있느냐 또한 관건이 됩니다.
본인 입으로 선포하는 "가까이"를 누리며 충만하다면 정말 더 바랄 게 없겠지요. 그래서 그러기를 바라고 또 그러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화답송) 계십니다.
제1독서의 서간에서는 사도 바오로의 고독이 뚝뚝 묻어납니다. 이 정도로 속내를 드러내는 걸 보면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를 진정 신뢰했던 것 같네요.
"데마스는 ... 나를 버리고 가고..."(2티모 4,10).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2티모 4,11).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2티모 4,16).
지금 사도 바오로의 처지는 버림받아 가난하고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인간 관계 안에서 벌거벗고 텅 비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가난과 비움은 인간적으로 참 비참하고 서글플 수 있습니다만, 하느님을 향해 비상하는 엄청난 도약대가 되어 줍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2티모 4,17).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쟁취할 수 있다면 버림받음조차, 가난조차, 고독과 외로움조차 은총입니다. 선물입니다. 당신께 더 가까이, 더 깊게 끌어당기시고자 마련하신 환경이고, 또 "차려 주신 음식"이기에 그렇습니다.
10월 전교의 달입니다.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 본성상 선교의 주체입니다.
직접 선교든 간접 선교든, 말로든 글로든 행동으로든 우리 모두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라고 부르심을 받았지요. 복음 선포자는 기도하는 이, 평화의 전파자, 만족하는 이, 하느님 나라와 가까운 이, 그리고 하느님께만 의탁하기 위해 가난과 고독을 받아들이는 존재입니다.
어떻게 이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 있냐며 부담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잘 살펴보면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갖추어주신 선물이 의외로 꽤 많다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2티모 4,17)고 먼저 우리를 은총으로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니 믿고 나아갑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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