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비장하고 결연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불행 선언이 계속되고, 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율법을 대체할 "믿음"에 대하여 말하는데, 이 모든 내용들이 "책임"이라는 무겁고 중차대한 말씀으로 모아지기 때문입니다.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루카 11,50).
예수님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잘못을 조목조목 밝히신 뒤,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살해해온 죄악을 언급하십니다.
예언자들이 전하는 바가 집권층과 종교 지도자들의 사고방식이나 이익과 불협화음을 낼 때 그들은 가차없이 그 목소리를 없앴지요.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사절이며, 곧 하느님의 목소리입니다. 그러니 예언자들이 흘린 피는 바로 하느님의 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루카 11,51).
책임론. 예나 지금이나 책임을 진다는 건 결코 가볍지 않은 일입니다.
되돌릴 수 없이, 이미 벌어진 일의 결과와 파장까지 수습하고 보상하는 일은 커다란 희생과 대가가 요구되고, 설사 책임진다 해도 모두를 만족시킬만큼 온전한 해결은 어렵기 때문이지요.
지금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선사받은 소중한 율법을 민족주의적이고 편협한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내내 하느님의 목소리를 외면했던 책임을 그들에게 묻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언젠가 자기들 입으로 "책임"을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긴 합니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마태 27,25).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종용할 때 내뱉은 군중의 외침이지요. 이 얼마나 무모하고 경솔한 호언장담입니까...
사실 아무리 권위자이고 지도자라 하더라도 한낱 인간에 불과한 그들이 무슨 책임을 질 수 있게습니까!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 또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지금 말씀은 하고 계시지만 실상 속으로는 그 책임을 온전히 당신 것으로 받아안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동안 역사 안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죄와, 앞으로 그들이 그 역사에 편승해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율법주의적 정당성을 보장받아 벌일 예언자 살해의 완결판(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책임까지 당신이 떠안으려 작정하고 계십니다.
당신 자신에게 모든 죄의 책임을 지우시는 것이지요.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과 예수님의 강생 구속이라는 엄청난 호의가 감사는커녕 백성들에게 받아들여지지조차 않아도 예수님은 묵묵히 당신의 길을 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책임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로마 3,21).
율법의 열혈 신봉자인 바리사이 중의 바리사이 사울의 입에서 이런 놀라운 고백이 흘러나옵니다.
사도 바오로는 살아있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돌에 새겨진 율법 조항의 문자를 대신하리라 자신있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유다인 입장에서는 천인공로할 반역적 발언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 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로마 3,22).
게다가 사도 바오로는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적 경계까지 허물어 버리고 있지요. 하느님께서는 국적, 종족, 혈연, 제도, 신분이 아니라 믿는 모든 이에게 의롭다 하신다니, 구원의 가능성은 이제 온 인류에게로 활짝 열어 젖혀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로마 3,23-24).
"거저"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거저"는 아니지요. 우리는 "거저" 얻었지만 하느님과 예수님의 희생은 "거저"가 아니었으니까요.
이스라엘 역사 안에 줄곧 흘려진 하느님의 피와, 이 모두를 책임지기 위해 당신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신 예수님의 피로 얻은 의로움의 가치는 가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로마 3,25).
주님께서 그저 믿으라고만 하십니다. 당신이 책임 진 것에 대해 공치사도 없고 보상도 요구하지 않으시면서, 그저 내가 너희를 위해 한 것을 믿으라고만 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인이어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의로움으로 구원될 것이니 그저 믿으라고요... 과연 모든 책임을 떠안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나를 대신해, 내 죄를 대신 책임져 주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 감사하고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요.
오늘 기념하는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순교자도 다른 모든 순교자, 증거자들처럼 그 감사와 사랑 때문에 함께 책임지는 길, 곧 순교의 길을 마다 않고 받아 안은 분이지요.
책임을 진다는 것.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사랑으로 그 문을 열고 구원의 길을 거저 터 주신 그분이 저만치 앞서 가십니다. 그 길은 사랑으로 장님이 되고 사랑으로 무지해진 영혼만이 흔연히 따라나설 수 있는 길입니다.
오늘 나는 어떤 책임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는지, 또 어떻게 그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을 것인지 묵묵히 숙고해 보는 날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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