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평일 미사 독서에서 울려퍼지던 구약 예언자의 목소리가 그치고, 사도 바오로의 서간이 봉독됩니다.
그동안 구약의 독서들이 복음 내용의 근거를 제시했다면, 신약의 서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복음을 해석하고 신앙 고백의 근간으로 삼을 것입니다.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루카 11,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기는 하는데 진짜배기 신앙인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듯합니다. 그들의 몸은 예수님 곁에 와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재고 따지는 중입니다. 요즘 말로 간을 보고 있다고 할까요.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
진짜 메시아일지, 믿어도 괜찮을지, 마음을 열어도 좋을지, 가르침을 따라야 할지 말지... 그래서 그들은 자꾸만 더 큰 기적, 더 확실한 표징을 요구합니다.
지금 입밖으로는 내지 않지만, 속으로는 이런 질문을 던지겠지요.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 믿게 하시겠습니까?"(요한 6,30)
예수님은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내고 육지로 뱉어진 요나 예언자의 표징을 들어 그밖에 다른 표징은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요나의 표징이야말로 수난과 죽음을 거쳐 사흘만에 부활하신 당신의 파스카를 미리 보여준 것이지만, 그 연관성을 깨닫지 못한 군중으로선 실망스럽기 짝이 없겠지요.
예수님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찾아온 남방 여왕을 들어 군중의 무지와 게으름, 안일함을 흔들어 보시지만 여전히 군중은 그저 눈에 보이는 기적만 게걸스레 군침 흘리며 기다릴 뿐입니다. 지혜도 회개도 그들의 관심 밖입니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31-32).
"여기에 있다!" 이 얼마나 엄청난 계시인지요! 먼 옛날 하느님께서 불타는 떨기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 당신을 드러내셨을 때 "나는 있는 나다"(탈출 4,14)라고 하셨지요.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즉 "있는 나"이십니다.
예수님도 "있는" 분이십니다. 그것도 "여기에!"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은 땅 위 "여기에", 우리 가운데, 우리 안에, 있는(계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자기 계시인 "있는 나"에 더해진 "여기"라는 현장성은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명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 그분은 여기에, 우리 곁에, 우리 가운데, 우리 안에 있습니다(계십니다).
지혜 자체이시며 백성의 마음을 아버지께 돌려 구원을 이루실 예수님이 지금 "여기에 있다"라고 두 차례나 반복하시는 안타까운 음성이 들립니다. 그 안에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탄식하셨던 하느님의 목소리가 담겼습니다.
"묻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는 문의를 받아 줄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나를 찾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는 만나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겨레에게 나는 '나 여기 있다,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하였다. 나는 반항하는 백성에게 날마다 팔을 벌리고 있었다"(이사 65,1-2).
사실 이제는 지혜를 들으러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현자를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지혜이신 분이 "여기" 계시니까요. 또 회개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들으러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갇혔다 살아난 예언자를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 모든 지혜와 표징의 주인이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는 사도 바오로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시작 부분으로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명징하게 설명합니다.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로마 1,2).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구약 성경에 미리 준비하셨다는 뜻이지요. 곧 구약은 신약의 준비이며, 또한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구약 성경 안에서 지혜의 상징인 솔로몬도, 물고기에 먹혀 죽은 줄 알았던 요나가 사흘만에 다시 나타난 기적도 예수님을 가리키는 안내문일 뿐입니다.
그런데 군중은 그토록 절절히 고대해온 실체 앞에서 여전히 안내문을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으니 예수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답답하실까요...
사도 바오로는 눈도 귀도 마음도 닫힌 우매한 군중 무리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알아듣고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로마 1,6)이 된 성도들에게 중요한 사명을 일깨워 줍니다.
바로"사도직의 은총"(로마 1,5)입니다. 사도직의 은총은 다름이 아니라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로마 1,5)고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입니다.
이렇게 부르심 받은 우리는 나이와 성별과 소속과 신분에 관계 없이, 또 지식의 많고 적음에 관계 없이 성령에 힘입어 말씀을 듣고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헌신하는 그분의 종, 그분의 사람입니다.
말씀과 함께 살아가면서 들은 바를 나누고, 나눈 바를 행하고, 행한 바를 봉헌할 때, 우리에게서 "사도직의 은총"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열매는 이웃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만들, 놀랍고 은혜로운 표징이 될 것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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