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10.21.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dariaofs 2019. 10. 21. 03:49


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재산 이야기입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루카 12,15).


어떤 사람이 유산 분배의 중재를 예수님께 요청하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고 하느님 모상으로서 품위를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있지요. 그런 목적으로 임하는 건강한 노동과, 그 대가로 얻는 재화는 필수 기본 요소이고 축복이지, 재물 자체가 악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 비유 안 부자의 말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입니다.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 거기다가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 '자, 네가 ...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루카 12,16-19)

그 부유한 사람의 생각과 말에는 온통 "나", 즉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탐욕"은 모든 힘을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할 때 쌓이는 죄입니다.


내 일, 내 수고, 내 재산, 내 안위, 내 행복... 자기중심적으로 쏠리고 기우는 사이 신앙과 진리와 양심은 균형을 잃어버리고, 인간은 우주 만물과 섭리와 복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잊어버리게 되지요.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탐욕이 슬픈 이유는 모으고 쌓고 누려온 그의 삶에 하느님이 부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분은 곁에 계셨지만 그가 그분을 외면하고 자기 능력과 자기 힘과 자기 재산을 믿었던 것이지요. "나"에게 그토록 집중해 살았건만 정작 "내" 목숨도, "내" 재산도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허무함...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도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21).
누가 하느님 앞의 부유한 사람일까요? 또 무엇이 하느님 앞에서도 재화로 인정받을까요?

오늘 제1독서와 연결지어 본다면 그 답은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

"아브라함은 ... 오히려 믿음으로 더욱 굳세어져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로마 4,20).


여기서 "오히려"라는 말씀이 한층 더 깊숙이 다가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아브라함은 자손이 없을 때도, 겨우 얻은 자식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도 주님께 대한 신뢰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지요. 그는 희망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희망했고, 약속을 믿을 수 없을 것 같았을 때 믿었습니다.

단순한 믿음도 하느님 앞에 큰 자산으로 남을 텐데,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지하는 믿음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그 믿음에 맞갖은 응답을 주시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 이상으로 차고 넘치게 말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로마 4,22).


사도 바오로는 아브라함이 굳게 지킨 그 믿음, 바로 그 확신 때문에 그가 의롭게 된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결과는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로마 4,24).

우리가 하느님 앞에 쌓을 수 있는 재화는 썩어 없어질 지상 것들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모아 오만하게 흔들며 내놓는 재물의 악취는 오히려 주님을 불쾌하게 만들 뿐이니까요.


설령 지금 눈 앞에 캄캄한 절벽과 거친 폭풍과 사나운 맹수를 맞닥뜨렸다 해도, 약속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듯 보일지라도 주님의 약속이 꼭 이루어지리라는 굳건하고 단순하며 흔들리지 않는 충직한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주님 발 앞, 천국 계좌에 차곡차곡 쌓을 수 있는 천상 화폐가 아닐까 합니다.

의혹과 고통, 절망의 도가니에서 달구어져 더 고귀하고 순결하게 된 믿음은 자기 안에 갇혀 있지 못하고 이웃을 향해 자선이 되고 선행을 낳으며 자비를 발휘합니다. 이 또한 매우 값진 천상 화폐가 되겠지요.

자신만을 위해 축적하고 비축하는 탐욕은 믿음이 결핍될 때 나오는 증상입니다. 먹이고 살리기도 하시지만, 앗아가고 죽이기도 하시는 분, 만물의 주님을 믿지 못하니 자력으로 대비하고 해결해 보려고 죽을 힘을 다해 영혼과 육신까지 갉아먹는 것이지요. 이 얼마나 공허하고 허무한 헛발질인지요.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주님은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신다"(영성체송).


주님의 눈길을 바라봅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신 분이 사랑을 듬뿍 담고 지그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 필요와 허기를 우리보다 먼저 알아채시고 재빠르게 반응하시는 그분이 가난하고 비참한 중에 당신을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십니다.

"네가 많이 힘들구나. 괜찮다. 내겐 다른 거 아무것도 필요없다. 그저 믿기만 하면 좋겠구나 그냥 믿어만 다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