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10.23.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dariaofs 2019. 10. 23. 05:02



오늘의 말씀들은 은총 아래 사는 이의 자세를 권고합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루카 12,40).


예수님께서 "생각하지도 않은 때"(루카 12,40)에 닥쳐올 주님의 날을 위해 준비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십니다.


본문 안에는 조금씩 표현만 다를 뿐,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루카 12,46)이란 말씀처럼, 사람의 아들이 오는 날이 얼마나 긴박하고 급작스럽게 들이닥칠지 반복해 묘사하고 있지요.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루카 12,41)
그런데 베드로의 관심은 그 "때"나 내용에 대한 의문보다 말씀의 대상에 더 쏠려 있습니다.


 예수님 곁에 있는 "우리"만을 위한 지침인지, 아니면 누구나 다,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하는지 가르침인지 궁금해 합니다. 우월감의 발로일지 책임의 과중함 때문일지 현재로선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의문의 답이 선명하게 떠오를 때가 있을 것입니다.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루카 12,42).


예수님은 집사를 비유로 드십니다. 집사는 주인과 종들 사이를 연결하지요. 주인의 뜻을 종들에게 전달하고, 종들이 주어진 일을 하도록 통솔하면서 그들의 생활도 돌보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은 주인이 어느날 갑자기 돌아왔다는 설정 아래, 종들을 잘 돌보면서 주인의 집안을 손색없이 꾸려가는 집사와, 맡겨진 종들을 학대하며 자기 욕구와 탐욕을 채우는 집사의 예를 드십니다.


전자에게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맡길 것"(루카 12,44)이라 하지요. 그의 충실함과 슬기가 그만큼 주인을 흡족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후자는 "매를 많이 맞을 것"(루카 12,47)이라 하십니다. 그의 게으름과 무절제한 욕망이 주인에게 실망을 주고 말았으니까요.

언뜻 듣기에 집사는 일반 군중과 예수님 사이를 잇는 제자들만을 지칭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마치 중간 관리자를 위한 말씀처럼 듣는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숙고해 보면, 우리 중 누군들 집사의 역할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온 세상은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유기체고요. 한 사람이 생명을 받아 세상에 나와서 살아가는 동안, 어느 누구도 돌봄과 연대의 책임에서 배제될 수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육신의 활동으로 맡겨진 가족과 이웃을 돌본다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이라도 그 마음에 고통 받는 온 세상 모든 영혼들을 품고 돌볼 수 있으니까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에게 맡겨질 주인의 모든 재산은 꼭 물리적인 것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은총 이야기를 계속 전개합니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습니다"(로마 6,14).


은총 아래 있는 이는 "의로움으로 이끄는 순종의 종"(로마 6,16)입니다. 은총의 날개 아래 품어지는 순간 그는 죄를 떠났습니다.


은총 아래 머무르면서 율법의 그늘로 다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시켜 은총의 길로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집사는 주인에 대해서는 물론 종들에 대해서도 율법의 의무가 아닌, 사랑의 의무를 다하는 존재입니다.


율법에만 묶여 최소한의 임무나 수행한다면 그저 대가를 바라고 노동력을 파는 날품팔이꾼과 다를 바 없겠지요. "충실하고 슬기롭다"는 주인의 칭찬은 그 이상의 투신과 헌신을 치하하는 보상입니다.

우리 집사들에게 삶에서 사랑할 기회는 얼마든지 다가옵니다.


내게 맡겨진 가족과 이웃, 지인들을 포함해,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나의 기도와 소박한 자비에 목을 축이고 숨을 연명하는 하느님의 아들딸들, 한 번도 마주친 기억조차 없는 연옥 영혼들까지 우리 돌봄의 울타리는 무한대로 열려 있습니다.

사랑하라고 부여받은 절호의 기회 앞에서, 그가 누구이며, 꼭 내 도움이 필요한지, 나 아니면 안 되는지,


내 감정이 헤프고 공연한지, 내 잔고는 얼마인지 냉철히 분석하고 따지고 계산하는 사이 우리는 은총의 날개 아래에서 다시 율법의 그늘로 빨려들어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마음이 시키는 길, 연민의 사랑이 부르는 길을 따라갑니다. 죄 짓지 않으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매달리는 율법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이끄시는 주님의 소리, 은총의 흐름을 듣고 따라가기 때문이지요.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8).


자,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습니다. 이 비유의 대상은 제자들만이냐 모든 사람이냐를 떠나서, 주님께서 많이 주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많이"의 기준이 궁금하지요. 그 답은 오늘 이 말씀을 만난 모든 이들의 마음 안에 들어있습니다.


누가 굳이 콕 집어 일러주지 않아도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답이 솟구칠 겁니다. 그 답을 따라가십시오. 자유롭게, 사랑의 이끄심을 따라, 은총이 허락하는 대로...

주인에게건 종들에게건 절대 사랑의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깨어 준비하고 있다면"(복음 환호송) 가능할 것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