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10.22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dariaofs 2019. 10. 22. 04:41



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제게 주인의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루카 12,3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인을 기다리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혼인잔치에 갔던 주인이 느닷없이, 예고없이, 갑자기 들이닥치더라도, 당장 아무 무리없이 맞이하여 여독을 풀 수 있게 섬길 수 있는 준비 자세를 갖추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허리의 띠"는 치렁치렁한 복장이 노동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허리에 붙들어 매는 끈입니다. '당신을 위해 무엇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는 마음을 옷 매무새로 표현한 셈이지요.

"등불"을 켜 놓은 상태는 '당신을 기다리기 위해 등불과 함께 제 영혼도 밝히고 있습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입니다.


깜깜한 밤, 저 멀리서 집을 향해 가고 있을 때 집 어딘가에 불이 켜져 있으면 마음이 설레고 위안이 되지요.


거창한 해후가 아닌 일상의 소소한 만남이어도, 모든 만남은 기다림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켜 놓은 등불은 그 기다림과 기대감을 더 밝고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되겠지요.

"그 주인은 띠를 매고 ...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7).


종이 자신을 깨어 기다려 준 것이 주인을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보십시오! 주인은 이를 종의 당연한 의무라 치부하지 않습니다.


긴 잔치와 여독으로 지쳤을 법도 한데 주인이 돌아오자마자 스스로 허리에 띠를 맵니다. 그리고 종들을 앉힌 뒤 그들의 시중을 듭니다.

오늘의 복음 대목에서는 두 차례나 종의 행복을 외칩니다(루카 12,37.38 참조). 그런데 그 행간에는 주인의 행복이 들어 있지요. 얼마나 행복하면 주인이 자청해 종처럼 되어, 종의 종이 되어 종을 섬기겠습니까!


이 역할의 전복, 신분의 전복은 누가 억지로 시켜서 될 일이 아닙니다. 주인 스스로 기쁘고 행복에 겨워 자기 자리, 자기 신분을 잊고(초월하고)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 유명한 죄와 은총의 역설을 이야기합니다.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로마 5,12).


성경은 원조의 불순종으로 인류의 죄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죄로 '생명의 나무로 이르는 길은 불 칼로 차단되고'(창세 3,24 참조) 인간은 죽음을 운명으로 떠안게 되었지요. 하지만 인류의 운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로마 5,18).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 죄 없는 어린양의 순결한 피는 원조가 초래한 슬픈 결말을 뒤집습니다. 하느님께서 종이 되고 사형수가 되셔서 이루신 봉헌으로 인류는 구원의 보증을 받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이천 년 전에 이루어진 고귀한 희생 제사의 의미를 우리는 얼마나 누리고 있는지요.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의 일상 안에, 생각과 말과 행위 안에 선과 진리를 가장하고 교묘히 스며들어와 있는 죄와 악과 어둠의 실체에게 우리는 번번이 무너집니다. 그리고는 실망하고 좌절하고 용기를 잃어버리지요.

"죄가 많아진 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


이 구원의 보증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비록 영육의 충돌과 모순이 우리를 끌어내릴지라도 예수님의 단 한 번의 희생 제사는 이 모두를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니 완성될 하느님 나라, 흠도 티도 주름도 없이 완성될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로 거듭나기까지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오히려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을 쏟아주십니다. 그분은 단죄와 심판이 아니라, 억압과 박탈이 아니라 은총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분이십니다.


 "당신 구원을 열망"(화답송)한다면 그분은 결코 얼굴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행복입니다.

복음으로 돌아갑니다. 종이 로봇이 아닌 이상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없겠지요. 평소 주인이 종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주인이 잔치에서 돌아온 이 순간, 주인은 종이 자신을 깨어 기다려 준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감동 받고 감격해서 종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 내려갑니다. 최고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내용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그 종들은 행복하다"(루카 12,38).
저는 거기에 감히 한 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주인은 더 행복하다"라고요.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