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열두 사도 중 두 분, 성 시몬과 타대오의 축일입니다. 미사의 독서와 복음은 구약의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을 잇는 교회, 즉 새로운 하느님 백성의 정통성을 확인시켜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루카 6,12).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함께 헌신할 사도들을 뽑으시기 전에, 혼신의 힘을 다해 아버지 앞에 머무르십니다. 침묵의 시간인 "밤"에, 고독의 공간인 "산"에서 하느님의 뜻을 당신 뜻으로 삼기 위한 치열하고도 충만한 일치의 시간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단 구성을 위해 깊이 고심하시는 동시에, 또 전적으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셨을 겁니다. '모든 것이 자기에게 달린듯이 준비하고, 모든 것이 하느님께 달린듯이 기도하라'는 말이 있지요. 지금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루카 6,13).
열둘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완전한 숫자로, 사도단의 구성이 구약의 하느님 백성과 맥을 같이 함을 의미합니다. 물론 결과론적이긴 합니다만,
우리는 그 열두 사도에 대해 얼마간 알고 있지요. 성경과 성전이 전하는 그들의 행적을 접해왔기에, 그들이 그다지 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특출하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지파나 소속, 라인이나 색깔 등 어떤 선발 기준이 작용했는지 요즘 같으면 몹시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을 테지만, 그때 예수님은 딱 한 가지만 보신 것 같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지도록 각자 제 역할을 할 사람들'이란 점입니다. 아직은 미숙하고 부족하지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움직일 사람들, 언젠가 때가 되면 성령께 활짝 열릴 자질을 갖춘 이들이란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루카 6,17).
참으로 장엄하고 영광스런 장면이 펼쳐집니다. 햇살이 가득한 들판에, 방금 뽑힌 사도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산에서 내려와 섭니다.
그들 중심에는 예수님께서 계시지요.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그들을 마주해 다가온 각지의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루카 6,17)고 합니다.
산에서 내려온 무리와 마주 다가온 무리는 서로가 서로를 환영하고 축하하고 염려하고 환대합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기대감으로 가득찬 눈빛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루카 6,18)입니다. 군중은 저마다 목적을 지니고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권위 있는 가르침, 차별 없이 품어주는 사랑, 누구도 내치지않는 포용, 놀라운 구마와 치유 기적들, 그리고 죄의 용서!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루카 6,19).
모든 이가 예수님을 열망합니다. 만지고 싶어하지요. 마치 날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만지기 위해, 이 길고 지루한 묵상 나눔을 찾아 읽는 우리 모두와 같습니다.
예수님 주위로 팔을 뻗치며 몰려드는 군중 안에 그분을 만지고 맛보고 간직하려 애쓰는 우리가 있습니다. 이리저리 떠밀려도 힘든 줄 모릅니다. 그토록 무수한 이들 가운데 딱 한 분, 예수님께 꽂혀 있으니 그렇습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 백성인 우리 모두에게 외칩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에페 2,20).
"예언자들"은 오실 예수님을 미리 알린 구약 시대의 사람들이었고, "사도들"은 오신 예수님을 전한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은 오시기로 되어 있는 말씀을 미리 알린 이들이었고 "사도들"은 말씀이신 예수님과 함께 살고 배우고 머무르다, 결국 말씀을 삶과 죽음으로 증거한 이들이지요.
교회는 구약 예언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 기초를 잇는 모퉁잇돌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구약과 신약이 연장선상에 존재합니다.
그분을 기점으로 하나로 이어진 역사입니다. 우리의 형제인 유다인들은 여전히 거부하고 있습니다만, 우리에게 이 뿌리와 연속성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2).
신약 이후의 하느님 백성은 민족과 지파를 초월하는 만민의 교회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모인 우리가 교회이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을 모신 거처, 성령의 거룩한 성전이지요.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신약 시대의 열두 사도로, 그리고 지금 교회의 시대, 성령의 시대에는 교계제도의 직무 사제직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로 이어집니다.
하느님 백성으로 불리움 받아 부르심 받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기도하고 헌신하는 우리는 말씀의 사도, 사랑의 사도입니다.
사도는 현재 "평지"에서 "군중"과 함께 있습니다만, 그들의 뿌리는 "산"이고 "밤"이며 "기도"이고 "하느님 뜻"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는 산과 평지, 올라감과 내려옴, 하느님과 군중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존재여야 합니다. 물론 균형을 맞춰주는 추(錘)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홀로 산에서 밤을 새우며 기도하신 열매가 바로 우리입니다.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기초로 세워진 거룩한 성전을 구성하는 보물이 바로 우리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저마다 보잘것없고 나약한 죄인이지만 마음 깊이 진주 같은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꽤 아름다운 "하느님의 거처"(에페 2,22)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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