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들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희망이 너무 작고 미약해서 잘 보이지도 않고, 자칫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쉬운 것들에 숨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 누룩과 같다"(루카 13,19.21).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작고 흔하고, 그래서 가치가 적어 보이는 사물들입니다. 게다가 저 혼자서는 별 효력을 내지도 못하지요. 씨는 땅과 온도와 수분과 햇빛이 있어야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됩니다.
누룩도 무언가에 합해져서 온도와 수분이 주어져야 발효를 시킵니다. 혼자서는 그저 무생물과 다를 바 없는 처지일 뿐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거대하고 어마어마하고 휘황찬란한 영광의 대국으로 착각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띄지도 않지요. 우리가 잘 아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보았듯이 "하느님의 나라"도 "말씀"처럼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루카 8,15)에게 열려 있는 보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나 누룩처럼 알맞은 생장 조건을 만나야 엄청나게 확대되고 늘어납니다.
새들이 깃드는 큰 나무도 되고 여럿의 배를 불릴 빵도 되지요. 그러려면 우리들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미약하고 하찮아 보이는 하느님의 나라를 알아보고 선택해서 품어야 합니다.
가난, 고통, 고독, 침묵, 비움, 포기, 양보, 용서 등 세상이 경시하고 조롱하고 외면하는 가치들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숨어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희망하는 이들이 견뎌야 하는 탄식과 고통을 숨기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로마 8,24).
구원은 희망하는 이들의 것이니, 지금 눈 앞에 구원이란 이름으로 선명하게 주어진 것이 있다면 먼저 자신이 희망하고 있는지를 따져 물어야 합니다.
아니라면 망상이나 신기루일 공산이 크지요. 우리는 희망함으로써 구원을 선취해, 구원 상태를 미리 앞당겨 살 수 있습니다. 희망한다면 기쁘고 충만하고 행복해도 됩니다. 그 자체가 구원의 표지니까요.
그런데 희망이 쉽지는 않지요. 희망하기 어려운 이유는 성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또 작고 미약하고 비천해서 결과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남이나 제도에 눈 돌릴 것 없이 자신만 보아도 그렇지요. "하느님의 나라"라는 희미한 씨앗과 누룩을 알아보고 품기는 했는데, 새들이 깃들 큰 나무, 여럿을 배불릴 빵을 기대하는 것조차 죄스러울 정도로 스스로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부족한 죄인에 불과한 자기에게서 과연 하느님의 나라가 성장하고 열매 맺을 수 있을지 매순간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게 됩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루카 8,25).
누구보다 인간 실존에 연민을지녔던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인내심"을 제안합니다. 재깍 성장이 보이고 결과가 나오면 인내심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희망이 그렇듯이 말이지요. 그러니 구원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희망과 인내는 어느 하나도 놓치면 안 될 필수불가결 세트입니다.
자신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면, 타인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면, 공동체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면, 교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면, 세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면,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걸어 봅시다.
그분은 이천 년 전 지구 한 구석 변방에 가난하고 힘 없는 아기로 오셔서 온 인류에게 하느님의 나라와 구원을 선사하신 분입니다.
그 희망 하나로 우리의 희박하게 꺼져가는 희망을 부여잡고 인내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희망과 인내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신비입니다.
자신과 타인, 공동체와 교회, 세상의 잿더미에서 희망의 불씨, 인내의 불씨를 뒤적여 키워내는 오늘 되시길 기도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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