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주님의 비장한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루카 13,31).
시작부터 긴박한 위기감이 감돕니다. 그런데 이 말을 전한 이들이 "바리사이 몇 사람"이라고 하네요. 그들은 예수님을 경계하고 죽이려 "독한 앙심"(루카 11,53 참조)까지 품은 이들인데 갑자기 왜 이런 친절을 보이는 걸까요?
바리사이 중 니코데모처럼 예수님께 호의적인 이가 없지는 않았지만, 오늘의 이 전갈이 전적으로 예수님을 아끼고 보호하려는 호의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그분이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떠나주기를 바라는 속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루카 13,30).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다가올 파스카 제사의 맛배기도 못 되는 이 정도 위협으로 백성을 위한 구마와 치유와 복음 선포의 소명이 중단될 수 없으니까요.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루카 13,33).
그 이유는 이처럼 명백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야 할 길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던 겁니다. 하느님 현존의 장소인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구심점입니다.
그들 정체성의 본류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곳은 또한 하느님의 목소리를 선별해 박해하고 살해해 온 어둠의 힘이 기승을 부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루카 13,34)
예수님의 안타까운 탄식이 들립니다.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인 듯 의인화되어 이름 불리웁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사람을 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에게는 저주가 아니라 용서가 향할 뿐입니다(루카 23,34 참조).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이름과 권력과 영광에 기대어 만행을 저지른 이들을 직접 부르시지 않고, 그들 모두가 속한 예루살렘을 빌어 그들의 죄악을 일깨우십니다.
이 순간 그들의 음모와 폭력과 악행의 그림자는 거룩해야 할 하느님 도성 예루살렘에게 드리워집니다. 슬프게도 인간의 죄는 도성에 부여된 영광의 이름을 바꾸어 버릴만큼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도 사도 바오로의 비장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로마 8,36).
그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자신의 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냐며 나열한 험한 단어들, "환난, 역경,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험, 칼"(로마 8,35) 등만 봐도 사도의 마음이 읽힙니다.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9).
이 말씀을 내놓는 순간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과 하나입니다.
온전히 예수님과 일치하여 그분의 심장이 되고 그분의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어떠한 위협이나 배척도, 죽음까지도 예수님을 아버지에 대한 사랑에서, 그리고 순종과 소명에서 갈라놓을 수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담담히 이 말씀을 완성할 것입니다.
세례받은 이로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닮아가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약하고 부족해서 이처럼 비장하고 결연한 말씀 앞에 서면 부담스럽고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키고 싶은 하느님과 우리와의 사랑은 우리 쪽에만 희생과 노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이 지켜지도록, 우리가 당신 사랑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하느님이 더 노심초사 애쓰고 계십니다.
"하느님, 당신은 저의 주님, 당신 이름 생각하시어 저를 돌보소서 ... 저는 가련하고 불쌍한 몸 마음속에는 구멍이 뚫렸나이다"(화답송).
이처럼 구멍 뚫리고 가련하고 불쌍한 우리에게 맞는, 우리가 견딜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기를 겸손히 청합시다.
당신과 우리의 사랑이 깨지지 않기를 우리보다 더 열망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믿는다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우리에게 꼭 맞는 길이 자명합니다. 그 길 안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무엇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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