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은 거룩함을 향합니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루카 17,12-13).
예수님께 나병환자 열 사람이 치유를 청합니다. 그들은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도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오지 못합니다.
부정한 전염병이라고 접촉을 꺼리는 이들을 피해 살아왔기에 스스로 조심합니다. 그래서 "멀찍이"라는 말씀 안에는 그들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슬픔이 서려 있습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7,13).
소문으로 들었는지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는 분임을 압니다. 치유와 기적, 죄의 용서와 말씀은 그분의 능력과 힘, 자비와 거룩함을 드러냅니다.
부정하다고 낙인 찍힌 그들은 그런 예수님께 자기들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더 다가설 수 없지만 그분께 무엇을 청해야 할지는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바로 자비입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루카 17,15-16).
예수님 말씀대로 사제에게 몸을 보이러 가는 도중에 치유가 일어납니다. 그 중 한 명, 사마리아 사람은 가던 길을 멈추고 예수님께 돌아옵니다.
그는 이제 예수님 가까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발 앞에 엎드렸으니 예수님과 매우 근접한 자리입니다. 이 가깝고 밀접한 관계성의 회복이야말로 단순한 치유를 넘어서는 자비의 효과입니다.
제1독서에서 지혜서 저자는 세상의 임금들, 통치자, 권력자, 군주들, 세력가들을 일깨웁니다.
"미천한 이들은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지혜 6,6).
그러니 하느님에게서 권력을 받은 이들은 그 힘이 누구에게서 왔는지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지혜 6,9) 애써야 합니다. 그들이 지닌 세속적 힘은 세상에서나 유용할 뿐 오히려 진정한 구원에 장애가 되기 십상입니다.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지혜 6,10).
하느님의 거룩함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면 그분 현존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거룩하신 하느님 앞에서 숨쉬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거룩해지니까요.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그분 마음을 차지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고통 속에 비참히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그분께서 주신 힘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 모두 똑같이 생각해"(지혜 6,7) 주신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루카 17,17)
돌아와 주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린 나병환자는 비록 한때 부정하다고 세상에서 내쫒긴 이였지만 거룩한 것을 거룩히 여길 줄 아는 이였습니다.
치유를 물리적 변화로 치부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라고 꿰뚫어 볼 줄 알았으니까요. 여기까지 깨달은 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와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거룩하신 분 발 앞에 몸을 던짐으로써 거룩함을 얻습니다.
우리가 큰 사람이건 작은 사람이건, 건강하건 병들었건 모든 피조물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의식하며 살 때 거룩함이 우리에게 옵니다.
우리를 둘러싼 존재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 안에서 움직이시는 하느님을 깨달을 때 거룩하게 됩니다. 거룩한 이는 거룩함을 나누어 주신 분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이르러야 구원입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9).
치유된 이는 깨끗합니다. 하지만 거룩한 이는 구원됩니다. 자비를 청하여 치유의 은혜를 받고, 감사를 통하여 구원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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