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11.11.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dariaofs 2019. 11. 11. 04:10



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용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 17,4).


예수님께서 죄를 지은 후 회개하는 형제를 횟수에 제한없이 용서해 주라고 하십니다. 일곱 번이라는 횟수는 완전한 수, 그러니까 딱 일곱 번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수를 가리킵니다.


번번이, 계속,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지경에 이르기까지 죄를 짓더라도 회개한다면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 용서의 원형이십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루카 17,5).


용서에 대한 가르침에 이어 믿음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주제를 이어서 배치한 복음사가의 의도를 헤아려 봅니다. 사실 용서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먼저 형제에 대한 믿음입니다. 죄를 지은 형제의 회개를 믿어 주고 또 반드시 변화되리라고 믿어 주어야 합니다. 회개의 증거나 결과물을 다그쳐서도 안됩니다.


증거가 있다면 믿음은 필요 없으니까요. 다른 하나는 보다 궁극적인 영역으로, 그 형제 안에 계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를 선하게 지으시고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을 믿을 때 용서는 나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 됩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루카 17,1).


믿음이 약하고 불안정한 이들은 똑같은 현상 앞에서도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렇게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죄 짓고 회개하는 이를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그는 분노와 절망과 자포자기라는 죄까지 더해서 짓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죄가 죄를 낳는 고리를 끊어 주는 길은 용서밖에 없습니다. 용서는 그의 짐을 덜어 주는 탁월한 방법입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루카 17,6).


형제에 대한 아주 작고 미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 형제는 변화될 것입니다.


어쩌면 거듭되는 용서에도 거듭거듭 죄를 짓는 형제에게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실망을 내려놓고 숨을 가다듬으며 외치는 용서는 돌무화과나무가 뽑혀서 바다에 심겨지는 것 같은 기적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제1독서는 지혜서의 시작 부분으로 우리에게 지혜을 소개합니다. 지혜는 "가르침을 주는 거룩한 영"(지혜 1,5)이고, "다정한 영"(지혜 1,6)이며, "온 세상에 충만한 주님의 영"(지혜 1,7)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시험하지 않는 이들을 만나 주시고 당신을 불신하지 않는 이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다"(지혜 1,2).


지혜서 저자는 아버지의 지혜이신 주님을 만나는 길을 명료히 밝힙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내게 이득이 될지, 믿어도 손해는 없을지, 괜히 믿었다가 인생 더 꼬이지 않을지 간을 보며 떠보느라 경계선 위를 뱅뱅 맴도는 이에게 지혜는 자신을 드러내지도, 만나주지도 않습니다.

용서에도 그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신의 눈으로 경계하시지 않고, 떠보고 시험하시느라 두 얼굴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우리도 회개하는 형제에게 시험과 불신을 거두고 믿어 주어야 합니다.

"선량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아라"(지혜 1,1).


이 말씀은 세상 통치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하는 초대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시험과 불신 없는 선량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용서할 때, 우리는 그 형제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 형제 안에서 우리에게 발굴되실 겁니다.

지혜가 얕고 우매한 우리는 반복되는 용서가 죄의 반복을 부를까봐 우려합니다. 그래서 용서에 인색해지고 자꾸 시험해보려 합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사실 반복적인 용서는 형제를 지치지 않고 회개하게 만듭니다. 그게 더 중요하지요. 바로 그것이 하느님이 바라시는 바이고, 또 우리에게 하고 계시는 일입니다.

아직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하느님의 용서를 배우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용서받는 사람은 죄인이고 용서하는 이는 하느님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처럼 용서하는 이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