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11.08.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dariaofs 2019. 11. 8. 04:27



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재산을 사용하는데 있어 하느님과 우리 인간의 기준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 줍니다.

복음에는 부자인 주인과 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 그리고 주인에게 빚진 이들이 등장합니다. 성경의 비유 속에 등장하는 '주인'이나 '아버지', '임금'은 대부분 하느님을 가리키지요. 문제의 발단은 집사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에서 시작됩니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루카 16,2).


집사가 주인의 재산을 마치 제 것처럼 낭비했나 봅니다. 주인의 뜻에 맞게 집행하지 않고 제 이익을 위해 썼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집사 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합니다.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루카 16,4).


집사는 실직 후에도 먹고 살 방도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길을 택합니다. 그래서 주인의 빛 문서를 날조해 빚 진 이들의 부담을 덜어 주지요. 집사와 빚 진 이들이 공모해서 주인을 속이는 행위는 명백히 범법이고 죄입니다.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루카 16,8).


이 말씀은 우리를 헷갈리게 만듭니다. '아니, 지금 예수님이 주인을 속이고 재산을 축낸 그 집사가 잘했다고 하시는 건가?'


하고 말이죠.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 집사에게 "불의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셨습니다. 주인에게 칭찬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불의가 사라진 건 아니라는 뜻이지요.

사실 가장 손해를 입은 이는 주인입니다. 빚 진 이들은 갚아야 할 빚이 줄었고 집사는 직업을 잃지 않으면서 칭찬까지 받았으니 저마다 필요한 이득을 본 셈입니다. 그러니 이 거래에서 주인만 바보가 된 듯 느껴집니다.

그런데 여기에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바로 "나는 괜찮다. 너희만 좋으면 나는 어찌되어도 상관 없다"는 그분의 관대함입니다.


비록 자기가 살기 위해 사람들의 짐을 덜어준 의도와 지향이 불순했고, 그래서 불의하다는 수식어를 벗을 수 없지만, 하느님께는 당신 재산의 손실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입은 도움이 더 중요합니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 16,8).
하느님은 세상 자녀들의 영리한(약삭빠르고 영악한) 거래를 통해서도 당신의 선한 일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관심사는 온통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성소를 당당히 피력합니다.


"이 은총은 내가 다른 민족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 되어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한 것입니다"(로마 15,16).

그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 받은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에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사실 사울이라는 열렬한 바리사이 유다인이 바오로라는 이방인 사도로 변모된 이 극적인 반전에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가 작용했음을 우리는 알지요.

하느님께서는 자청해 나서서 새로운 길을 박해했던 사울을 괘씸하게 여겨 그를 무너뜨리시는 대신, 그 신념과 열정이라는 자질을 쓰시고자 그의 방향을 돌려놓으셨지요.


인간적으로 출중한 그의 능력과 스펙에 신념과 열정까지 더해지니, 새로운 길은 신학적 기반까지 형성하면서 온 세상으로 전파됩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당장의 박해나 눈 앞의 손해를 인내하시면서 길고 먼 안목으로 세상 자녀들의 영리한 거래까지 허용하고 쓰시는 분이십니다.


여럿을 살리기 위해 누구 하나는 손해를 봐야 한다면, 심지어 죽어야 한다면 그게 당신이어도 상관없는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우리 가운데 완전히 백 프로 의롭다고 자신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으로 제법 열심하고 철저한 생활을 하면서도 어느 면은 좀 부족하고 어느 면은 심지어 불의하기까지 하기도 합니다.


저마다 고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 영혼의 가시가 존재하니까요. 이런 우리에게 주인이신 하느님은 당장의 단죄와 내침으로 응하시지 않고 그 부족함과 불의함이 선을 이룰 수 있도록 길을 터주십니다. 그분은 굽은 자로도 직선을 그으실 수 있는 분이니까요.

그렇게 주님은 오늘도 불의한 집사인 우리에게 이웃과 세상을 돌보라고 당신 재산을 맡기십니다.


당신은 손해를 봐도 좋으니 두루 도움이 되고 선익이 되도록, 특히 가난과 채무에 짓눌린 이들을 위해 재량껏 애써 보라고 장을 펼쳐 주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모든 자질을 총동원해 주인의 뜻에 동참해야겠지요. 만물의 주인이신 그분은 당신의 손해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대범하고 관대한 분이시니 두려워 말고 함께합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