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11.06.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dariaofs 2019. 11. 6. 04:47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우리에게 사랑받기를 원하시는, 사랑이신 분을 만납니다.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루카 14,25)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저 우르르 뒤를 따라간다고 다 제자는 아닐 겁니다.


그 중에는 호기심으로 따라붙은 이도 있을 것이고 자기에게 득이 될지 아닐지 탐색하러 온 이도 있겠지요. 예수님께서 그런 군중에게 몸을 돌려 제자의 길을 일러 주십니다.

첫째, "가장 가까운 가족과 자기 목숨까지 미워"(루카 14,26)해야 합니다. 둘째,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라야"(루카 14,27)합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소유를 다 "(루카 14,33)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이 세 조건을 말씀하시면서는 두 개의 비유를 곁들이십니다.


탑을 세우기 전 미리 앉아서 공사 경비를 꼼꼼이 계산하는 사람의 비유, 그리고 제 나라에 쳐들어 오는 임금과 싸울지 말지를 미리 앉아서 가늠해 보고 결정하는 임금에 대한 비유입니다.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겠느냐?"(루카 14,28)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루카 14,31)


공사와 전쟁에 앞두고는 이와 같이 철저한 사전 준비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으니까요. 예수님의 뒤를 따름, 그분의 제자가 됨, 그분을 닮아가는 길에도 역시 준비가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하신 세 가지 조건이 바로 사전 준비 작업이 될 것입니다.

아주 가까운 가족과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는 말씀은 감정적 증오나 배척이 아니라, 그들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제 십자가를 짊어지라는 것은 본성적으로 유쾌하지 않은 결점과 장애와 방해 요인도, 그 모두를 허락하신 분과 함께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소유를 다 버리라는 말씀은 영적 갈망과 허기를 망각하게 만드는 물질, 장소, 사람, 기억의 금고를 비우고 그 모두의 주인이신 당신만을 소유하라는 뜻입니다. 결국 제자 됨의 준비조건은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계명과 사랑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율법에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계명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거치면서 세부 항목이 점점 늘어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모두 기억하고 일일이 삶에 적용하는 일이 적지 않은 부담이었지요.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과 백성의 더 돈독하고 깊은 사랑을 위해 마련된 율법이 오히려 하느님을 더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기게 만드는 폐단을 직시하며, 율법을 지키는 가장 지혜로운 길은 제시합니다.

"그것들은(계명들은) 모두 이 한 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로마 13,9).


모든 계명의 골자이며 근본 정신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천명하신 예수님 말씀(루카 10,25-28 참조)을 잇는 가르침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 그분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건조하고 냉정한 이성주의적 계명 준수 이상의 무엇이 요구됩니다. 바로 주님 향한 뜨거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분과 함께 있고 싶고, 닮고 싶고, 따라하고 싶어서 다 버리고 나서는 길이 제자의 길이니까요. 계산만 하고 앉아서는 영영 준비만 하다 근처도 못 가 볼 생생한 현실이지요.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얼마나 담대하고 명료한 말씀입니까! 율법을 주신 하느님이 사랑이시니(1요한 4,8) 사랑은 율법의 완성 맞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함으로써 그 안에 깃든 모든 계명을 완수합니다. 사사롭고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욕정을 넘어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애착을 내려놓고 십자가를 인내하며 소유를 비우는 제자의 길에 들어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 길은 분명 사랑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이 길이 곧 사랑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