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12.02. 대림 제1주간 월요일

dariaofs 2019. 12. 2. 04:32




‘예수께서 백인대장의 종을 치료하시다’, 파올로 베로네세의 작품

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메시아께서 오시어 이루실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마태 8,7).

백인대장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중풍으로 괴로워하는 종을 위해 도움을 청하는 그에게 예수님께서 선뜻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이 말씀은 당시 상황 안에서는 친히 백인대장 집까지 가셔서 고쳐주시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만, 성자께서 세상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시기 위해 강생의 채비를 차리실 때 하신 말씀으로도 들립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맺은 사랑의 계약에서 점점 멀어지고, 인류는 어둠의 세력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기다리며 희망과 절망, 인내와 포기 사이에서 지쳐가는 중이었지요. 인간의 몸을 취해 오신 성자의 육화는, 그런 인류를 바라보시던 성삼위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자비와 연민이 솟구쳐, 재고 따지고 할 것 없이 선뜻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려는 순간에 하신 말씀일 겁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주님의 거룩한 탄생으로 이루어집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마태 8,8).

백인대장이 대답합니다. 놀라운 겸손과 믿음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과, 그분 말씀의 효력을 추호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의 입을 통해 발설된 이 말씀에서 우리는 강생하시려는 성자께 바치는 지상 피조물의 응답을 듣습니다. 주님을 맞이할 땅과 공기와 햇살과 모든 피조물의 겸손어린 합창입니다.

백인대장은 알고 있었을까요? '내가 가서 고쳐 주겠다'는 말씀과 본인이 이야기한 "한 말씀"이 같은 존재, 같은 의미라는 것을요. 주님의 의지와 말씀, 실행은 하나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마태 8,10).

예수님의 기쁨이 전달됩니다. 이방인의 믿음이 우리 주님의 영을 신명나게 들썩입니다.


이로써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든 "우리"와 같은 이방인들도 하늘 나라의 잔칫상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의 수혜자인 동시에 계승자이기도 합니다.

제1독서는 더럽혀진 예루살렘의 치유와 회복을 노래합니다.

"주님께서는 ... 시온의 딸들의 오물을 씻어 내시고 예루살렘의 피를 닦아 내신 뒤에"(이사 4,4).

주님께서는 먼저 상처 입고 버려진 예루살렘을 품으십니다. 닦아 주고 어루만져 정결하게 하십니다.

"정녕 주님의 영광이 모든 것을 덮어 주는 지붕과 초막이 되어 ... 피신처와 은신처가 되어 주리라"(이사 4,5-6).

"덮어 준다"고 하십니다. 뜨거운 햇살과 더위, 폭우와 비를 막아주는 보호막이 되어 주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이와 더불어 그간 쌓인 예루살렘의 죄와 반역을 낱낱이 들춰내어 수치와 치욕을 안기시기보다, 당신 눈에서도 세상 눈에서도 가려 주시겠다는 뜻도 될 것입니다. 당신도 따져 묻지 않고 세상도 추궁하지 않도록 덮어 주시는 자비일 겁니다.

우리 중 누구도 완전무결한 이는 없습니다. 저마다 존재 어디엔가 죄로 병들고 약함에 허물어진 구석을 안고 살아가는 중이지요.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선뜻 "내가 가서 고쳐 주마" 하며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한 말씀"으로 우리는 나았습니다.

"우리 구세주 오시리니 이제 두려워하지 마라"(입당송).

사실 우리는 구원자 예수님의 탄생을 지금 여기서 체험합니다.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죄와 수치와 약함을 씻어내 주시고 닦아 주시고 덮어 주시는 손길로 완성됩니다.


그러니 지금 초라하고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에 불과하지만 희망하며 주님을 기다립시다.


지금 우리의 고통스런 실존이 그분을 부른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그분을 부릅시다. 초라하고 작은 우리의 겸손과 믿음이 그분을 또 다시 불러내릴 것이니까요.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