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들에서는 밝고 경쾌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퍼집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루카 10,21).
이 말씀에 머무르는데 예수님의 기쁨이 전해지는지 입꼬리가 올라가며 마음에 흥이 일어납니다. 문맥으로 보면, 파견하셨던 일흔두 제자가 선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기뻐하며 성과를 아뢰자 예수님께서 보이신 모습입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깨닫는데 있어서 아직 많이 미숙하고 부족한 제자들입니다. 오죽하면 "철부지"(루카 10,21)라 표현하셨겠습니까! 하지만 그만큼 주님께 철저히 의탁하는 순수한 믿음의 소유자가 철부지입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루카 10.23).
성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기쁨에 차 성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일치를 이루는 이때는 신적 희열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드러난 신비적 순간입니다. 예수님을 둘러싼 채 그분의 기쁨을 바라보고 있는 제자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세상이 기대하는 영웅적 메시아가 아닌, 근본마저 모호한 떠돌이 가난뱅이 설교가에게서 하느님의 현존을 관상하는 은총을 받았으니까요.
제1독서는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루어질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노래합니다. 이사이의 아들 다윗이 이스라엘의 번영을 이끌었듯이, 새로운 다윗이라 할 수 있는 메시아를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햇순"(이사11,1)의 이미지로 연결짓고 있습니다.
오실 메시아 위에는 "지혜, 슬기, 경륜, 용맹, 지식, 경외"라는 주님의 영이 머무릅니다(이사 11,2 참조). 그리고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이사 11,3)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 안의 예수님처럼 말이죠.
그가 이룰 정의와 공정, 신의와 평화의 세상은 아름답고 조화로우며 따사롭습니다. 오늘 이사야서 대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영혼에 온기가 돌고 마음이 활짝 펴질 정도지요. 누구도 누구를 해치거나 긴장시키지 않습니다. 억압도 폭력도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천적이라 일컫는 존재들이 함께 뛰놀고 장난치고 뒹굴며 창조의 본성인 사랑을 회복합니다. 그날에는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이사 11,9).
주님을 알면 평화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툼, 경쟁, 폭력, 억압에 무능해집니다. 주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체험하고 사랑하며 그분을 닮아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주님을 아는 이는 별볼일없는 존재로 뒤쳐질 수도 있겠네요. 세상은 "철부지"를 그다지 환영하지 않으니까요.
메시아가 오시어 구원된 세상은 결국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성공 논리가 아닌 십자가 논리가 주도하는 나라, 모두가 하느님을 닮아가느라 앞다투어 사랑하고 희생하는 나라, 그래서 약육강식의 위계가 자취를 감춘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초라한 마굿간, 구유 안에 누운 한 아기에게서 봅니다. 저 높고 화려하고 견고한 성 안에서가 아니라 가난과 약함의 현장 한가운데서 발견합니다. 이렇듯 가장 연약한 모습에서 메시아를 알아보는 눈은 행복합니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보려고 했지만 보지 못한"(루카 10,24)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성탄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분은 우리 각자의 존재 속 가장 약한 부분에 오십니다. 우리 공동체 안의 가장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오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능하고 버림받은 모습으로 오십니다.
이 철부지들이 가슴 쭉 펴고 활짝 웃으며 당당히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때가 메시아의 시대이고 구원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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