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년 12월 4일 대림 제1주간 수요일

dariaofs 2019. 12. 4. 05:09



어릴 때 미술 시간에 데칼코마니 기법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종이를 반 접어 한 면에 물감을 짠 뒤 양면을 겹치면 좌우 대칭의 작품이 탄생하는 원리지요.

오늘 미사의 독서와 복음이 마치 그런 느낌입니다. 독서와 복음이 같은 그림을 보는 듯, 서로 명쾌하게 호응합니다.


독서에서 예언된 희망과 바람이 복음에서 그대로 실현되고 있으니까요. 과연 구약성경의 모든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진리 또한 실감하게 됩니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마태 15,30).

군중의 도움으로 질병과 장애에 시달리던 이들이 주님 앞에 나아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군중의 협력과 예수님의 연민으로 그들이 온전해집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과 겨레 앞에서 정결을 회복하고 제 자리를 되찾게 됩니다.

"... 너울과 덮개를 없애시리라 ... 눈물을 닦아 내시고 ... 수치를 치워 주시리라"(이사 25,7-8).

주님께서 서로 다른 이들 사이에서 구분과 차별, 소외와 분쟁, 무지의 너울, 덮개를 없애 평등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행복을 훼손하는 설움과 부끄러움도 치워 주시어 저마다 떳떳하고 충실히 당신을 섬기게 하실 것입니다.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마태 15,31).

이제는 "군중이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어느 정도 기대했기에 아픈 이들을 데려오는 수고를 자처한 건데 직접 기적을 확인하니 경외감이 솟아오릅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보내어 악의 세력을 물리쳐 주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이사 25,9).

예수님을 체험한 군중의 찬양이 이러했을 겁니다. 예언이 실현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계신 하느님께서 얼마나 기쁘실지 상상해 봅니다.


누군가 나를 타인에게 소개할 때 이처럼 내 지고한 사랑과 정성을 알아 준다면 세상을 얻은 듯 뿌듯할 겁니다. 사랑을 깨달은 이나 사랑을 들킨 분이나 행복하긴 매한가지겠지요.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마태 15,32).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당신 곁에 머무르던 군중의 굶주림에 마음을 쓰십니다. 메시아를 고대하던 이들이 그분 말씀과 기적에 이끌려 사흘을 따라다닌 후입니다.


예수님은 가르치고 고쳐주시는 일 못지않게 당장 뱃속도 채워주고 싶어 하십니다.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사랑입니다.

"그날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 25,6).

메시아 시대, 구원의 날이 오면 온 백성은 주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베푸신 잔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거기서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배도 채우고 흥도 돋우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다"(마태 15,37).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가 예수님의 감사 기도, 사랑의 지향과 함께 많은 군중을 배불릴 양식으로 불어납니다. 흡족하고 충만한 잔칫상이 벌어지고, 자격 조건 없이 모두가 그 향연에 참여합니다.


내것 네것 따지지 않고 풍족히 나누며 저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이 산에서 지금 이루어지는 기적은 옛부터 마련되어 예언자들이 예고했던 하느님의 계획 안에 이미 들어있었습니다.

"보라, 당신 백성을 구원하러 주님이 오시리니 주님을 맞이하러 달려가는 이는 복되어라"(복음환호송).

이사야는 메시아의 도래를 그렸고, 복음은 예수님을 향해 나아온 백성을 그렸습니다. 이처럼 구원자 주님과 우리의 만남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입니다.

주님의 "오심"과 그분을 맞이하려는 우리의 "달려감"이 교차하는 접점에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이 거리는 그분의 뜨거운 사랑과 우리의 열렬한 갈망으로 나날이 좁혀지고 있습니다.


그 접정, 절정의 순간을 향한 그분과 나의 끊임없고 부단한 줄달음질이 결국 우리를 일치로 이끌 것입니다. 지금의 대림시기도 그 여정 안의 어디쯤입니다. 그러니 열렬히 희망하며 기다림의 고삐를 늦추지 맙시다. 기쁨은 그 안에 있습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