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 말씀에서 주님은 저에게 참 든든한 분으로 다가오십니다.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이사 26,1).
외세의 침략과 유배로 만신창이가 된 이스라엘이 노래합니다. 그런데 견고한 성읍이라니요! 착각일까요, 아니면 허세일까요, 심하게 말해서 망상일까요...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않고 외칩니다. "보호, 성벽, 보루, 성문, 평화, 반석..." 오늘 제1독서 안에 드러난 표상들이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든든합니까! 이 모두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아니 하느님께서 이 말씀들 안에서 당신의 광채를 뿜어내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 대목은 산상수훈에서 이어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길게 이어진 뒤에 나옵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 나라의 원리를 사람들 마음에 풍성히 심어 주신 뒤, "실행"이라는 개념을 그들 손에 쥐어 주시는 겁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마태 7,24).
반석. 사실 집 짓는 이라면 누구나 단단한 토대 위에 집을 짓고 싶어할 겁니다. 자청해서 허술하고 약한 모래 땅을 선택하지는 않지요. 그렇다면 자기가 집을 지어올릴 지반이 반석인지 모래인지 미리 알 수는 없나 봅니다.
예수님을 통해 들은 가르침을 실행하는 이에게는 그 말씀들이 자기 삶을 지탱하는 반석이 될 것이고, 한 쪽 귀로 들어왔다 한 쪽 귀로 흘러나갈 소음 쯤으로 여긴다면 그 생각대로 자기 삶을 지탱해 주지 못하는 모래처럼 흩날리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과, 말씀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말씀하시는 분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는 따르고, 신뢰가 안 되면 따르지 않겠지요. '아이가 엄마 말을 잘 듣는다'는 표현이 단순히 귀로만 듣는 걸 의미하지 않듯이 실행까지 가야 들음이 완성되는 것이니까요.
결국 예수님께서 들려 주신 주옥같은 가르침들도 우리가 믿고 행동으로 옮길 때에야 비로소 우리 삶의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의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굳건히 지탱해 주는 반석이 있으니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이사 26,3).
변함 없으신 분을 인간으로서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항구함과 충실성으로 섬기는 이는 주님께서 평화로 갚아 주십니다.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지고지순하고 순결한 믿음 하나만 보시고 그렇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실행할 때 우리는 밑바닥부터 튼실히 차오릅니다.
물질 세계의 집은 터를 잡고 기둥을 올리고 뼈대를 세우는 것으로 기초 공사를 하지만, 영의 세계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는 이미 주님의 거처이고 집이니까요.
이 집의 내구성은 우리와 주님 사이의 관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말씀하신 분을 믿으면 따를 것이고 그만한 관계성을 형성하지 않으면 흘려듣는 것으로 그치고 말겠지요. 그런데 우리 하느님은, 실행으로 표현되는 믿음이 부실한 영혼에게 억지로 당신을 믿으라고, 실천하라고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소중히 여기시니까요. 그분은 믿지 않을 자유까지도 허용하시는 사랑의 모험에 몸을 던진 분이십니다.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이사 26,4).
그렇습니다. 그분이 바로 반석이십니다. 들은 바를 믿고, 믿은 바를 실행함으로써 우리는 단단하고 견고한 반석, 주님 위에 세워집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하느님을 반석이라 노래했지요. 그들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강건하고 변치 않고 영원하며 힘과 위력이 넘치는 피조물에 하느님을 비추어 본 것입니다. 신약의 백성인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석이십니다.
하느님께 바쳐진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돌 제단"(신명 27,6 참조)이시고, "생명의 물을 쏟아 갈증을 풀어 주시는 바위"(탈출 17,6 참조)십니다.
우리의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가장 든든한 분이십니다.
언제나 우리 발 밑의 반석이 되어주시려 우리의 믿음과 신뢰를 기다리고 계시지요. 그분은 당신께 대한 우리 신뢰가 슬쩍 비치기만 해도, 당신이 하신 말씀이 실행으로 옮겨지는 기미가 비치기만 해도 당장 우리 발 밑에 당신을 내던지실 분이십니다.
무겁고 불안정하고 엉성한 우리 존재의 집을 자청해 등에 얹고 비바람, 홍수와 싸우실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십니다.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이사 26,3).
그러니 믿고 나아갑시다. 말씀을 듣고, 믿고, 실행하는 사이 우리도 반석 위에서, 반석과 함께 반석과 하나가 되어 갈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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