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년 12월 7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9. 12. 7. 04:12



오늘 미사의 말씀들 안에서는 '하느님의 연민'이 가득합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

인류를 죄악과 암흑에서 구하시려는 구원 계획은 하느님의 연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랑으로 창조하신 당신 자녀들이 겪는 온갖 한계와 어려움, 고통이 그분의 시선과 귀를 우리에게로 향하게 하였고, 그분 심장을 연민의 눈물로 채웠습니다.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마태 9,6).

가엾은 이들에게 당신이 해 주시는 일을 제자들도 하라고 그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들에게 부여된 사명은 치유와 회생, 정화와 구마,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왜 이 사명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제자들이 먼저 그 모든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허약했고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으며 부정했고 마귀에게 시달렸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희망도 잃어가고 있었지요. 그들 역시 지치고 지친 이스라엘의 보통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런 그들을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시고 뽑으셔서 고쳐 주고 일으켜 주고 깨끗하게 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구원의 희망을 주셨기에 지금의 그들이 된 것입니다. 그것도 모두 거저! 무상으로! 공짜로 말입니다.

제1독서에서 예언자는 '주님의 위로'를 전합니다.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이사 30,19).

우리는 이미 어려서부터 울지 말라는 다독임이, 더 나아가 이제는 울 일이 없으리라는 약속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체험해 왔습니다. 예언자가 전하는 이 하느님 말씀은 그 자체로 유배와 억압에 지친 이스라엘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네가 부르짖으면 ...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리라"(이사 30,19).

"뒤에서 '이것이 바른길이니 이리로 가거라' 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이사 30,21).

주님과 우리가 서로를 듣습니다. 우리의 울부짖음을 그분이 들으시고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듣습니다.


서로에게 귀가 되어 주고 서로를 경청합니다. 서로의 현존을 의식하고 귀기울이며 서로를 향해 응답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다가올 메시아 시대, 하느님 나라는 창조주와 피조물이 이 사랑을 회복하는 "때"입니다.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은 듯하리라"(이사 30,26).

그날에 쏟아질 빛이 상상이 가십니까? 일곱 배 밝아진 햇빛, 이레 동안 비칠 빛의 모음... 하느님께서 7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빛이신 주님께서 더 이상 밝을 수 없을 만치 온전한 광채로 찬연히 빛나십니다. 세상 어느 구석에도 어둠이나 그늘을 찾아볼 수 없는 그날, 피조물 중 어느 누구도 그 빛의 광채에서 제외되지 않고 온전히 빛 안에 머무를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분은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이사 30,20). 우리는 더 이상 모호하고 막막한 실존의 멍에를 이리저리 끌고다니며 헤매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눈이 그분을 뵙고 그 빛에 온전히 노출되어 소독되고 정화되고 밝아집니다. 빛 앞에서 빛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결정적인 구원의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는 매년 대림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 성탄을 맞이하지요. 우리 앞에 놓인 가난한 구유 속 아기가 그 빛이십니다. 매년 반복해 다가오지만 매번 같을 수 없는 구원의 선물을 안고 하느님께서 내려오시는 겁니다.

거저 받은 은총을 거저 나누는 것이 모든 믿는 이들의 사명입니다. 먼저 우리 마음 안에 솟아나는 연민을, 주님의 "가엾은 마음"에 합하고, 오늘 예수님께 파견받는 제자들과 함께, 우리가 체험한 구원의 희망을 안고 나아갑시다.


온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속삭이고 다독여 줍시다. 누구에게건 주님의 위로가 되어 줍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