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환에 두 개의 촛불을 밝힙니다. 오시는 주님께 한층 더 간절하고 한층 더 빛나는 그리움을 열어보이는 대림 제2주일입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회개'를 이야기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회개를 외칩니다. 회개를 위해 우리는 삶의 네 개의 축을 성찰합니다. 나와 하느님의 관계,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 나와 자연 환경, 즉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입니다.
첫째, 회개는 하느님께로 방향을 돌려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로마 15,7).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창조된 우리 모든 이의 존재 목적을 이야기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느님께 커다란 보탬이 되지는 않지만 그분은 당신의 충만함을 나누시고자 창조를 감행하셨지요. 우리는 그분께 찬미와 찬양, 흠숭, 사랑을 되돌려드리는 본연의 부르심을 인식하고 회복함으로써 그분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로마 15,4).
말씀은 우리 죄를 인내하시고, 우리 약함을 위로하시며,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인내, 위로, 희망"은 우리의 회개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둘째, 회개는 나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움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마태 3,9).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그분의 모상입니다. 하느님의 진실함, 선함, 아름다움은 우리 존재 깊숙이 새겨져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남과 비교하거나, 익숙해진 죄와 어둠에 머물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일에 인색합니다.
자신을 자신으로 수용하기보다 인종, 국적, 족보, 연줄, 인맥, 소속, 직분 등 온갖 타이틀 뒤로 숨어 그것들의 힘과 자기 본연의 존재를 혼동하고 살기 일쑤지요. 그럴수록 진정한 자기와 멀어지고 유리되어 자기를 잃어가는데도 말입니다.
"그분께서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태 3,11).
우리는 물과 성령과 불로 새로워진 존재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말씀, 해마다 돌아오는 전례주년,
그리고 성사를 통해 나날이 새로워지는 은총을 입고 살아가지요. 이것이 바로 그 어떤 신분, 타이틀, 연줄보다 강력하고 진실한 우리 정체성입니다.
물질과 숫자라는 세상 잣대에 스스로를 매몰시키지 말고, 그런 자신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초대받은 회개입니다.
셋째, 회개는 이웃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로마 15,7).
기꺼이 받아들임. 이는 우리에게만 요구되는 무리한 강요가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께 기꺼이 받아들여진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독려입니다.
사실 '다름'이라는 장벽을 넘어서는 일이 쉽지만은 않지요. 인간적 노력만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는 주님께서 우리의 편협한 자기중심성과 주관적 잣대의 힘을 조금 빼주시면 가능해집니다.
사람 사이의 회개는 그래서 주님 은총의 협력이 매우 절실합니다. 혼자서 하려고 하기보다 주님과 함께 할 때 열리는 문이지요.
"한마음 한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빕니다"(로마 15,6).
이웃과의 화해는 그저 인간적으로 편하고 좋자고, 똑같아지자고, 서로 이득이 되자고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저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느님을 향해 "한마음 한목소리로"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기꺼이"라는 말씀 안에는 우리 인간과 천양지차로 다르시면서도 묵묵히 우리의 실존을 끌어안고 보듬어 주시는 하느님의 "선선한 내어줌"이 들어 있습니다.
넷째, 회개는 자연 환경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에 대한 존중의 회복입니다.
"땅이 주님의 앎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이사 11,9).
제1독서는 창조된 만물의 가장 조화롭고 아름다운 상태를 노래합니다.
동물들조차도 서로 해치지 않고 함께 평화로이 공존하는 모습은 곧 메시아 시대, 하늘 나라의 모습이겠지요. 이처럼 모든 존재가 주님을 알게 되면 더 이상 폭력도 눈물도 없을 겁니다.
앎이 곧 사랑이고, 사랑하는 이는 사랑이신 분의 뜻을 벗어나지 않는 까닭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낳은 기후 변화와 그에 기인한 자연재해, 무너져가는 생태계와 지구의 몸살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지요. 소수 인간의 편리와 이익에 집중할수록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병들어 갑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파멸로 청산해야 할지도 모르는 무서운 빚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 3,8).
오시는 주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대림 제2주일에 말씀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를 빌어 보다 강하게 회개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인간이 지닌 네 가지 관계성, 즉 하느님, 나, 이웃,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를 잘 성찰하고 각자 돌이켜 나아갈 방향을 찾으라는 초대입니다.
그런데 방향을 바꾸어 돌아서는 진정한 회개에는 반드시 열매가 맺히게 마련입니다. 머리로 하는 관념놀음이나, 입으로 날리는 공수표는 회개일 수 없으니까요. 오늘은 '인권주일'이고 이번 주간이 사회교리 주간입니다.
말씀 안에 머물러 주님께서 보여 주시는 회개의 길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실천으로써 한 걸음 내딛는 대림 제2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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