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년 12월 10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dariaofs 2019. 12. 10. 05:48



오늘 미사의 말씀들 중, 입당송, 제1독서, 화답송, 복음 환호송에는 "오신다"는 말씀이 반복되어 선명히 언급됩니다.


우리를 향해 기쁘게 서두르시는 주님의 경쾌한 발걸음이 그려지고 있지요. 그리고 이어지는 복음에서는 길 잃은 양을 찾는 목자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길 잃은 양"(마태 18,12).

그동안은 이 복음 내용의 주제를 '목자의 기쁨'에 집중해 묵상했는데 오늘은 길 잃은 양이 더 눈에 밟힙니다.

양들은 목자의 뒤를 따라 양치기 개들의 호위를 받으며 목초지로 이동합니다.


아무래도 양의 수가 많다보면 이탈하는 양도 생기게 마련이지요. 제 고집에서건 어리석음 때문이건 아니면 속도를 못 쫓아가는 약함 때문이건 낙오된 양은 두려움에 휩싸일 겁니다.

황량하고 물 없는 광야, 굶주린 맹수들, 어둠과 적막, 천재지변, 강도떼... 주인의 보호에서 벗어난 양에게 세상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다들 제 탐욕을 채우려 호시탐탐 기회만 엿볼 뿐이지요. 목자의 품에서는 소중한 가족이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기다릴 건 잡아먹히거나 다치거나 굶어죽거나 그중 하나의 결과 뿐입니다.

그러니 그 양이 얼마나 애타게 목자를 기다리겠습니까! 방향성을 잃은 까닭에 스스로는 더 이상 목자와 양 떼를 찾을 힘이 없으니, 오직 하나 남은 희망이라면 목자가 자기를 찾아주는 것 뿐입니다.


 이처럼 간절하고 절박한 양의 심정에 머무릅니다. 오시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희원(希願)이 이러해야 하지요.

"그가 양을 찾게 되면 ...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마태 18,13).

고맙게도 목자는 양을(나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양들의 안전을 뒤로 하고 보잘것없는 한 마리 양을(나를) 찾아 온 광야를 헤집고 다닌 것 같습니다.


목자에게 양은(나는) 무수한 재산 목록 중,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아닙니다. 곁에 두고 싶어 애가 닳는 사랑이고, 행여 상하고 다칠까 간을 졸이는 자식입니다. 목자에게 그 양은(나는) 목숨을 걸어도 좋을 소중한 존재입니다.

"양을 찾게 되면"

잔뜩 긴장해 있던 양은 비로소 안도합니다. 이젠 살았습니다. 양은 목자가 자기를 찾아 주리라 신뢰했고, 그가 반드시 오리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목자는 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기뻐한다."

그런데 양도 기쁘지만 목자가 더 기쁩니다. 양을 품에 안은 목자는 그 양이 자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고대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믿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존재에서 존재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목자의 기쁨과 양의 기쁨에 함께 머무릅니다. 두 존재의 기쁨은 하나입니다. 찾은 이와 찾아진 존재가 하나 되어 누리는 기쁨으로 두 존재 모두 위로를 받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은 당신이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린 사람에게 의로움의 화관을 주시리라"(영성체송).

이상하지요? 의로움의 화관이라면 적어도 일생동안 정의와 공정을 실천한 이에게 수여되어야 맞는 게 아닌가 싶은데, 고작 한 일이라고는 당신이 오시길 애타게 기다린 것 밖에 없는 사람에게 주신다니요...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곧 믿음입니다(로마 3,28 참조). 그리고 믿는 사람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길 잃은 양이 목자가 자기를 찾아 주리라 믿고 희망하듯이, 오시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애타게 기다린 이는 이미 의롭습니다.


의로운 행위 이전에 믿음으로 이미 의롭게 되었으니 오시는 주님께서 그에게 합당한 "의로움의 화관"을 씌워주시는 겁니다.

묵상을 맺으며 오늘 제1독서에 나타난 주님과 우리 관계의 표상을 선물로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 40,11).

주님은 이처럼 정성스럽고 극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몫은 그분의 사랑을 믿고 애타게 간절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날 의로움의 화관은 우리의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