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오시는 주님께서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입해 구원을 이루시는지 알려 줍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삶의 짐은 다양합니다. 그중에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이 당한 사고나 선택할 수 없는 관계에서 오는 책무도 있지만, 또 우리가 돌보지 않은 내적 상처와, 우리가 지은 죄에 기인한 짐도 상당합니다.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이사 40,27).
이 푸념이 낯설지 않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인생에서 우리가 견뎌야 할 무게가 너무 벅찰 때, '주님이 나를 잊으신 건 아닌지, 그분이 이제 내게 관심을 끄신 건지, 내 죄 때문에 그분이 내게서 영영 눈을 돌려버리신 건 아닌지,
지금 내가 벌 받고 있는 건지, 지금 내 꼴이 나에 대한 그분의 최선인지...' 약한 우리 마음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밀고 들어오지요.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이사 40,27-28).
우리의 이 실망 어린 한탄은 곧바로 주님 귀를 뚫고 들어가 그분 마음을 흔들어 놓고 애간장을 녹입니다. 모든 사랑이 다 헤아려질 수는 없지만, 오해받은 사랑은 꽤 아프기 때문이지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은 지금 우리가 어떤 처지인지 잘 아십니다. 겉으로 그럴싸하게 꾸미고 표정 관리도 하면서 살지만 예수님은 속속들이 우리 실존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라"고 하시네요. 저마다 다른 형태로 지고 있지만 버겁고 무겁기는 매한가지인 각자의 "짐"에 대한 예수님의 첫째 요구는 거두절미하고, 다 괜찮으니까 주저하지 말고 당신께 어서 "오라"는 것입니다.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화답송).
예수님은 당신께 다가온 우리에게서 죄와 상처에 기인한 짐을 덜어주십니다. 추궁하거나 수치를 주지 않으시고 그저 용서하시고 치유하십니다. 이것으로도 우리 어깨는 한결 편해지고 가뿐해집니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이사 40,29).
그분은 멀리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우리 곁에 아주 밀접히 자리하시면서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부분까지 속속들이 개입하고 싶어하는 분이시지요. 단, 우리가 바라고 허용할 때에만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분 사랑의 개입은 우리에게 "안식"을 줍니다. 외적인 편안과 무탈함 이상의 존재적 안식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과 함께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는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이사 40,31).
이 지상의 순례길을 살아가면서 세상 걱정과 무게를 온전히 다 벗어버리기는 어렵겠지만, 진정 무엇에 기대고 누구에게 바라느냐에 따라 영혼의 내성과 복원력에는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넘어져도 일어날 힘, 무너져도 추스를 힘, 깨져도 회복할 힘... 도전과 공격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더 무성해진 도전과 공격에도 꿋꿋이 설 수 있는 힘, 다시 싱싱하게 날아오를 힘은 평소 우리 영혼이 그분 안에서 누리는 "안식"에서 나옵니다.
이 대림시기에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러, 우리의 안식이 되시러 오시는 그분을 달려나가 맞이합시다.
"주님을 맞이하러 달려가는 이는 복되어라"(복음 환호송).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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