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dariaofs 2020. 1. 1. 03:38





말씀과 함께 새해를 엽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갈라 4,4).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이야기하는 이 여인이 바로 오늘 우리가 성대히 기리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십니다.

제게는 축복이 가득한 새해 첫 날의 말씀들이 일제히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인 "기도"를 향하는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마리아의 기도입니다. 성모님은 기도의 모범이십니다. 처음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도 천사의 "인삿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루카 1,29)하셨지요.


마리아는 말씀을 마음속으로뿐만 아니라 육신으로도 품으셨습니다. 부산하게 말씀을 헤집거나 흩어버리지 않고 그저 침묵 가운데 곰곰이 머무르십니다.

<말씀에 머물러 되새기는 기도>는 말씀이신 분의 현존 안에 온전히 잠기는 기도입니다. 다가오신 말씀을 온 존재로 품다 보면 그분이 어떤 분이시고 무엇을 원하시는지 머리가 아니라 영혼이 감지합니다.

말씀이신 분의 정감이 내게 스며들어 당신을 드러내시면, 이내 문자는 사라지고 문자 안에 감추어졌던 주님의 속성, 주님의 마음이 만져집니다.


그 주님과 하나되어 일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바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기도입니다. 이때는 무얼 바라거나 청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지도 않지요. 그저 그분과 사랑 안에 잠겨 사랑하면 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민수 6,27).

다음은 <축복의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사제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백성을 위해 축복을 명하십니다.


타인을 축복하고 복을 빌어 주는 것은 직무 사제뿐만 아니라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 아니 하느님의 모상인 모든 사람의 권한이고 의무일 것입니다.

하느님과 마주하여 대화할 때 우리 시선이 자신의 욕망과 안위에만 고착되어 있지 않고 타인의 선과 유익을 향하고 있다면,


그것도 진심으로 염려하고 응원하고 있다면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주님께서 참 흡족하시겠지요. 축복의 기도는 축복하는 이와 축복을 받는 이, 아버지를 동시에 행복하게 만듭니다.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갈라 4,6).

<성령께 내어맡기는 기도>입니다. 우리를 형제라 불러주신 성자 예수님 덕분에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 현존하십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서 성부 하느님을 향해 힘껏 아버지라 부르십니다. 그 영과 하나 된 우리도 함께 아버지를 부릅니다. 이는 성삼위 하느님의 호의가 아니면 우리 힘으로 꿈꿀 수 없는 은총이지요.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사도 바오로는 성경 다른 곳에서도 성령께서 우리 기도를 어떻게 도와주시고 이끄시는지 알려 줍니다.

살다 보면 주님 앞에서 무얼 청해야 할지, 무슨 말씀은 드려야 할지 모르게 되어버리는 순간도 닥치게 됩니다. 이제껏 청한 내 간구가 과연 아버지의 뜻에 맞는 기도였는지 성찰하게 되면서 갑자기 길을 잃은 듯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내 안의 성령께 그냥 맡겨드리면 됩니다. 내 안의 성령께서는 내가 원하는 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정확히 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자유로이 기도하시도록 방해꾼인 내 자아와 욕망은 잠잠해져야 합니다.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루카 2,16).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루카 17,17).

매우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목자들의 말과 행동은 순박한 믿음에서 우러납니다.


소박하고 단순한 그들은 이 엄청난 신비의 증인으로 채택된 것에 대해 우쭐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들은 바를 보기 위해 서두릅니다. 진위를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보기 위해서"(관상)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이 계신가 계시지 않는가 가늠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확인 차원이 되어서도 안 되고, 교만의 근거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기도는 그저 믿음이 지시하는 바를 보는 것입니다. 봄! 관상은 우리 믿음을 보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우리게 기꺼이 열어보이시는 은총입니다.

"목자들은 ...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루카 2,20).

목자들은 들었고, 찾아냈으며, 들은 말을 알려 줍니다. 선택된 증인의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지요. 자기들의 몫을 다한 목자들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자기들의 자리로 되돌아갑니다.

목자들이 돌아간 제자리는 이전과는 다른 목장, 목초지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그곳에 찬미와 찬양이 흐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기도의 결과를 외부에서 찾다가 실망하기 일쑤지만, 실상 기도는 기도하는 이의 내면에서부터 열매가 맺히는 법입니다. 주님이 보여주시는 바를 본 영혼은 더이상 결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기도 자체, 봄 자체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루카 2,21).

이 이름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천사가 각각 알려 준 바 있습니다(마태 1,21; 루카 1;31 참조). "예수"는 "주님께서는 구원하신다"는 뜻의 히브리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천사의 전언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여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긴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성자의 소명이 그 이름 안에 각인된 것입니다.


기도는 비록 침묵이나 머무름처럼 정적이더라도 이루어지는 힘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품는 그 자체에 완성이 내포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미사 말씀들 곳곳에 묻혀 있는 기도의 보물들을 두서없이 꺼내보았습니다. 사실 모든 말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고, 또 그 자체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주님께서 올해 우리를 축복 가득한 기도의 곳간으로 이끄시는 듯합니다. 말씀이 기도로 이끄시니 그저 따라가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말씀사랑 벗님! 올 한해 말씀 안에서, 기도 안에서 행복하시길 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