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4,21-26)
<믿고 사랑한다면>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요한 14,22)"
이 질문은 초대 교회 신자들의 의문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신자들에게만 나타나셨는데,
만일에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셨다면,
특히 빌라도나 헤로데나 대사제 같은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셨다면
그 효과가 얼마나 대단했을까? 라는 것이 당시 신자들의 의문이었습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요한 14,21)."
예수님의 말씀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나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알아볼 것이다."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어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부러 제자들과 믿는 사람들만 골라서
그들에게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빌라도나 헤로데 같은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제로 만나도 예수님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자기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만일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제자들과 신자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안 믿는 사람들도 함께 있었다면,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아도,
안 믿는 사람들은 못 알아보는 일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안 믿는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타나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예수님께서 "...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셨을 때,
하느님께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
라고 답변하신 일이 있습니다(요한 12,27-28).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천둥이 울렸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냥 막연하게 '천사가 말했다.' 라고 합니다(요한 12,29).
(아마도 제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셨을 때,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냈다고 믿고 하느님을 찬양하는데,
어떤 사람은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서 쫓아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마태 9,34).
똑같은 일을 보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일에서 하느님을 보았고,
어떤 사람은 하느님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이 없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마태 13,13).
이 말은, 하느님(예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만
차별적으로 은총을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은총을 내려 주시는데,
믿고 사랑하는 사람은 은총을 은총으로 알아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안 믿는 사람은 못 알아보기 때문에 은총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마태오복음의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도 그런 뜻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고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사고,
어떤 상인이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고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해서 그것을 삽니다(마태 13,44-46).
그런데 보물과 진주를 얻기 위해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먼저 보물과 진주를 제대로 알아보아야 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지금 계속 반복하고 있는 '알아보다.' 라는 말은
'시력'이나'능력'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예수님)의 은총과 사랑을 알아보게 해 주고, 받게 해 주는 믿음과 사랑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노력'입니다.
안 주셔서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안 받으려고 해서 못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닙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는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믿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 사랑받기를 바란다면 먼저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한다면 이미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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