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0,27-30)
<그들은 나를 따른다.>
4월 21일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과 신앙인들의 관계에 관한 말씀인데,
단순히 그 관계를 서술하는 말씀은 아니고,
'착한 목자'(요한 10,11)이신 당신의 사명을 선언하시는 말씀이고,
목자를 따르는 양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요한 10,27ㄱ)."
이 말씀은, '내 양이 되려면 내 목소리를 알아들어야 한다.'로 해석할 수도 있고,
'내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면 내 양이 될 수 없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을 뜻합니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요한 10,27)."
이 말씀에서 '나는 그들을 알고' 라는 말은,
양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뜻이기도 하고,
'양들은 나를 알아야 한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양들에게 좋은 것을 주실 수 있고, 양들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또 양들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착한 목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하고,
어디로 가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 뒤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나를 따른다.' 라는 말은 '그들은 나를 따라야 한다.'로 해석됩니다.
예수님의 양이라면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은 '예수님만' 따라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뒤를 따라가는 것은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것입니다(마태 16,24).
예수님의 양이 되면 예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요한 10,28ㄱ)."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든 유혹과 악에서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예수님의 품을 떠나는 사람은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분인데(마태 18,12),
그 '잃은 양'이라는 말은 길을 잃은 양을 뜻합니다.
목자를 거부하고 자기 스스로 떠나버린 양은 '잃은 양'이 아닙니다.
(유다는 배반을 한 뒤에도 최후의 만찬 때까지는 예수님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그때까지는 '잃은 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떠나버렸고,
떠난 뒤부터는 '잃은 양'이 아니라 '배반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양들을 보호해 주실 수 있고,
양들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아버지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하느님은 온 세상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아무도 하느님(예수님)을 이길 수 없고, 하느님의 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요한 10,29)."
이 말은, 보호와 생명에 관한 예수님의 약속은
누구의 공약처럼 공약(空約 - 거짓 약속)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약속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 보호와 생명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 뒤를 따르려면 한 가지가 꼭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쁨'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밭길을 걸어가든지, 편안한 탄탄대로를 걸어가든지 간에
예수님을 따르는 일 자체가 기뻐서 그 기쁨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만일에 다른 것에서 더 큰 즐거움과 재미를 찾는다면,
또는 다른 길이 더 즐겁고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예수님 뒤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러면 목자와 양의 관계는 끊어집니다.
갈수록 성소자가 줄어드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기쁨을 모르기 때문이고,
다른 것에서만 즐거움을 찾기 때문입니다.
(세속의 즐거움만 찾는 사람은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미 사제 생활과 수도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기쁨'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자기의 삶을 기뻐하는 사제와 수도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부르심과 응답의 길은 사실 선배가 간 길을 후배가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 길은 사도들이 간 길을 그 후계자가 따라가고, 다시 그 후계자가 따라가고...
그렇게 이천 년 동안 이어진 길입니다.
그런데 앞서 가는 사람들이 자기 삶을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 길을 뒤따라가려고 하는 사람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성소자 수가 다시 늘어나기를 바란다면
사제와 수도자들이 먼저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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