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16,15-20)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모든 신앙인의 사명입니다.
복음을 선포한다는 말은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그 소식이 나에게 기쁨이 되는 소식이기 때문이고,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선교활동에서 중요한 것>
1) 기쁨 - 복음을 전하는 사람 안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흔히 보는데,
자기 안에 기쁨이 없다면 '어떻게'를 고민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전해 줄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전해 주는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에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2) 삶 - 복음의 기쁨은 '기뻐하는 생활'로 나타납니다.
그 기쁨이 생각 속에만 있고 '삶' 속에 없다면 그건 진짜 기쁨이 아닙니다.
온 삶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선교활동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것입니다.
3) 믿음 - 기쁜 소식을 듣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 소식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 그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할 수 있는 것은 자기가 믿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안 믿는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전할 수는 없습니다.
선교활동은 이론이 아니라 '믿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4) 사랑 -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 자비, 구원은 전하지 않고,
신자 수가 늘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속세의 영업 활동과 다르지 않게 됩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교활동은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선교활동은 상대방의 몸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일입니다.
5) 희망 - 복음을 전하는 일은 희망을 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희망은 막연한 먼 훗날의 희망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지금의 희망'입니다.
그 희망을 믿는 것이 신앙인의 '믿음'이고,
그 희망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신앙인의 '기쁨'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믿지 못하고, 희망이 없으면 기뻐하지 않고,
희망이 없으면 사랑이 힘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희망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은 믿음을 잃은 사람입니다.)
선교활동은 희망을 잃고 절망과 좌절과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6) 생명 -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예수님의 생명을 전해 주는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은 나중에 죽은 다음에야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막연한 미래의 생명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생명입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그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그 모습은 생기가 가득 차 있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생기 없는 모습으로, 어둡고 쓸쓸한 표정으로 복음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기쁨, 사랑, 생명력은 그 자체로 강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도 저절로 전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7) 평화 -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예수님의 평화를 전하는 일입니다.
선교활동은 사람들을 제압하기 위한 전투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한 봉사입니다.
공격적으로 선교활동을 하는 일부 종파를 보면,
그들이 가는 곳마다 분열과 갈등이 생기고 평화가 깨집니다.
그들은 기쁜 소식이 아니라 무서운 소식만 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결코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일이 아닙니다.
사랑을 사랑으로만 전할 수 있는 것처럼 평화도 평화로만 전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더라도 평화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사실은 예수님의 일입니다.
예수님의 일이니 예수님 방식으로 해야 하고,
예수님의 일이니 예수님께서 하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도와드릴 뿐입니다.
그러니 결과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과만 강조하는 것은 복음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겨자씨의 비유'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겨자씨가 큰 나무로 자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하실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은 그 씨를 심는 일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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