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26-38)
<응답, 순종, 기쁨>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은 원래 3월 25일인데,
올해는 성주간과 부활 팔일 축제를 피해서 4월 8일로 옮겼습니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신 일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날이고,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순종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시작된 것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사제 서품식 때의 장면들이 생각납니다.
먼저 교구 총대리가 서품 대상자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면 대상자들은 "예, 여기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제단 앞으로 나갑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 가지 서약을 하게 되는데,
"...을 원합니까?" 라는 질문과 "원합니다." 라는 답변이 반복됩니다.
그 다음에는 안수식, 직무 수여식 등이 이어지게 됩니다.
처음에 이름을 부를 때,
서품 대상자들이 자기를 불러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고 나가는 그 예식은
단순한 전례 예식이 아니라(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부르심'과 '응답'의 성격과 특징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상징입니다.
서품 대상자들은 서품식 전에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대상자들은
자기의 이름이 대상자 명단에 들어 있는지를 마지막까지 잘 모릅니다.
(서품식 직전에 탈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각자 서품 청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는데
서품 심사 결과를 미리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대상자로 확정되는 때는 서품식을 시작하면서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입니다.
서품 대상자들은 이미 청원을 했고, 응답을 할 준비가 되어 있고,
자기의 이름을 불러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부르면 즉시 대답하고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가,
또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도 않고,
딴 생각을 하고 있거나 딴 마음을 품고 있다가
얼떨결에 응답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응답도 그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불러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하는 것까지 미리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잉태도 받아들인 것입니다.
또 서품식 서약이 '원합니까?' 라는 질문과
'원합니다.' 라는 답변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성모 마리아의 순종과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라는
마리아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바랍니다.'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그 일을 마리아 자신도 원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원하느냐?' 라고 물었다는 내용은 없지만,
뜻을 생각하면 그런 질문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마리아가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강요당해서 어쩔 수 없이 복종한 것이라면
그것을 응답과 순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 자신이 원하는 일이고, 그래서 응답하고 순종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일은 마리아에게 큰 기쁨이 되는 일입니다.
만일에 원하지 않는 일인데도
하느님의 명령이라니까 두려워서 복종한 것이라면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루카 1,47)"
라고 노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성령 잉태를 받아들여야 했으니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오해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 세속적이고 인간적으로만 상상하는 것이고,
응답과 순종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무섭고 힘들다고 울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믿음대로, 또 희망한 대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순종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크게 기뻐했습니다.)
우리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언제 어떤 식으로 부르심을 받아도
즉시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분이었기 때문에,
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함께 원하면서 협력하고 헌신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신앙인의 모범이 되는 분이기 때문에 공경합니다.
주님의 기도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라는 기도문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것을 땅에 있는 우리도 원한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우리도 원하는 생활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기쁨의 생활'입니다.
사제생활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자기도 원하는 생활이기 때문에
'기쁨의 생활입니다.
(당연히 '기쁨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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