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4월 14일 다해 부활 제3주일

dariaofs 2013. 4. 14. 04:30

 

                                                                                     (요한 21,1-19)

 

 

 

<예수님과 베드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이나 물으신 것은

분명히 베드로가 세 번이나 부인한 일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부인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베드로는 '당신은 저 사람의 제자가 아닌가?' 라는 질문을 받고

'아니오.' 라고 대답하는데(요한 18,17),

부정적 질문에 부정어로 대답한 것이어서

그의 대답은 듣는 사람에 따라서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는 애매모호한 답변입니다.

 

그래도 어떻든 '나는 예수의 제자다.' 라고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그의 말을

'나는 제자가 아니다.' 로 알아들었기 때문에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다.' 라고 말한 것을

'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신자가 아니다.' 라는 뜻으로 확대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제자' 라는 말이 '신자'를 뜻할 때도 있지만,

베드로는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다.' 라는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고,

또 자기의 신앙을 부정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그의 '부인'은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 아니고,

또 그 일을 '배교' 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베드로가 '아니오.' 라고 대답한 것은

믿음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에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 일은 당시의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고 위험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베드로 같은 사도도 그럴 정도였으니 예수님의 수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라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모두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잘못을 꾸짖지 않으시고,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질문만 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예수님의 질문에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 라는 전제가 들어 있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했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질문은

당신의 사랑과 용서에 베드로가 사랑으로 응답하기를 바라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고,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한 21,16.17).

그런데도 굳이 세 번씩이나 질문하신 것은

'회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사랑 없이 단순히 처벌이 두려워서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라면

아직 회개의 단계에 이른 것이 아닙니다.

배반자 유다는 자기의 죄를 뉘우치긴 했지만

회개하지는 않고 자살해버렸습니다(마태 27,3-5).

유다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겁에 질려서 얼떨결에 제자라는 것을 부인한 다음에

금방 자기의 잘못을 뉘우쳤고, 슬프게 울었습니다(마태 26,75).

벌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운 것이 아니고,

사랑하기 때문에, 또 사랑 받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자기의 잘못이 슬퍼서 운 것입니다.

 

그가 슬프게 운 것은 '회개의 시작'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은 '회개의 절정'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양들을 돌보는 일을 한 것은 '회개의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양들을 돌보라고 하신 말씀은

베드로 쪽에서는 '보속'이 되지만,

예수님 쪽에서는 '부탁'을 하시는 말씀이 됩니다.

회개를 했다면 보속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부탁을 들어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부탁'으로 해석하는 것은

'사랑'이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조건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해서 용서하는 것이라면 죗값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작은아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이유가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양들을 돌보아라.' 라고 부탁하신 것은

베드로의 회개를 받아들이신다는 뜻도 되고, 베드로를 믿으신다는 뜻도 됩니다.

그를 믿기 때문에 교회 전체를 그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능력만 믿으신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랑과 충성심과 열정도 믿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믿으셨다는 것은

그가 세 번이나 부인한 일을 완전히 지워버리셨다는 뜻도 됩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베드로 사도의 자격에 대해서 시비를 걸 수 없습니다.

 

만일에 베드로 사도의 자격에 대해서 시비를 건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일에 대해서 시비를 거는 것이 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