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성탄 시기가 끝나고, 하느님 백성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연중 시기에 들어섭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 선포와 구원의 길을 함께할 제자들을 부르시는 대목이고, 독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판관 시대와 왕정 시대를 잇는 "주님의 믿음직한 예언자"(1사무 3,20) 사무엘의 등장을 준비합니다.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마르 1,19-20).
마르코 복음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합니다. 특히 이 부르심 사화에 등장하는 예수님과 다른 인물들의 행동이 속도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막힘 없이 이어지지요.
예수님은 먼저 "보시고" 그들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봄"과 "부르심" 사이에는 간격이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그분이 숙고를 하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분의 "봄"이 찰나적이어도 그 자체가 곧 통찰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시선은 잘못된 부분과 헛점을 솎아내는 편집의 눈길이 아니라, 상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담긴 가능성을 보는 눈길입니다.
오늘 예수님 눈에 띈 네 명의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은 즉각적 응답으로 예수님의 부르심에 호응합니다.
보통의 이스라엘 남성이라면 식민지 상황을 견디며 메시아윽 오심을 고대하였을 터라, 예수님의 출현과 부르심이 희망으로 다가왔을 법도 합니다.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마르 1,18).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마르 1,20).
그들은 "버리고" 떠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이제껏 영위한 익숙한 삶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들은 호기롭게도 생계의 수단인 배와 그물, 혈육의 상징인 아버지를 버립니다. 새 질서로 들어서기 위해 옛것과의 연을 끊어냅니다.
버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물건 하나, 기억 하나 버리지 못해 안절부절 주저했던 순간을 누구나 체험했을 겁니다.
모두 다 움켜쥘 수 없을 때, 더 가치로운 것을 선택하기 위해 덜 가치로운 것을 내려놓아야 하지요. 그래서 모든 걸 버리고 얻은 것이 더 귀하고 소중한 법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받고는 있지만 하느님께서 태를 닫아 놓으셔서 아직 제 몸의 소생을 얻지 못한 상태입니다.
"당신에게는 내가 아들 열보다 더 낫지 않소?"(1사무 1,8)
아들 없는 설움에 우는 한나에게 남편 엘카나가 위로를 건넵니다. 이스라엘이나 고대 근동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문화 안에서 아들은 어머니의 힘이지요. 그런 아들을 갖지 못한 한나에게는 남편밖에 없습니다. 그가 전부인 셈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르심에 모든 걸 버리고 따라나선 복음 속 제자들이 바로 열 아들보다 나은 한 신랑을 선택한 사람들 아닐까 합니다.
세상이 주는 명예, 재물, 권력 등 열 아들이 없어도 충실하고 사랑 넘치는 신랑, 주님 한분으로 만족하며 사는 길이 제자의 길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 모두는 저마다 부르심 받은 시기도 다르고, 모습도 양상도 다르지만, 영혼 저 깊고 은밀한 곳에서 "당신에게는 내가 아들 열보다 더 낫지 않소?" 하고 속삭이신 주님의 소리를 듣고 길을 나선 이들입니다.
"주님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영성체송).
그렇습니다! 이 고백이 곧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얻은 신랑, 주님을 따라나선 우리의 응답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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