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후 넷째 날인 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의 사명'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사명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입니다.
"한처음 시간이 생기기 전, 말씀은 하느님이셨네. 그 말씀이 세상의 구원자로 태어나셨네"(입당송).
이처럼 입당송은 예수님께서 태초부터 계시던 말씀이시며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심을 노래합니다.
이스라엘에서 '구원자(고엘)'는 가난한 형제의 빚을 대신 갚아 주거나, 형제의 넘어간 토지를 되사서 돌려 주는 이, 후손을 이어주고, 피의 복수를 대신 해주는 이를 가리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루카 4,14).
복음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으신 후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는 장면입니다. 사십 일 전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루카 4,1)셨던 예수님께서 이제 같은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 전도를 시작하십니다.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루카 4,18).
예수님은 이사야 예언서의 한 대목(이사 61,1-2)을 인용해 당신 사명을 밝히십니다. 곧 가난한 이에게 기쁜 소식을,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눈먼 이들에게 빛을,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이 사명의 완성이 곧 "주님의 은혜로운 해"인 희년의 도래입니다. 희년에는 제 소유지를 되찾고 거룩히 지냅니다(레위 25,8-13 참조).
모든 것은 잃고 무너지고 손상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갑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에 하느님께서 처음 주셨던 온전한 상태로 되돌려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사실 이 말씀에는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당신의 도래와 희년을 동일시하신 것이니까요. 주님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메시아로서 해방과 치유, 되살림과 되찾음, 기쁜 소식의 주체가 곧 당신이심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구원 방식은 이스라엘이 지켜오던 구원자(고엘)의 의무들을 넘어섭니다. 이는 영성체송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영성체송).
예수님의 구원 방식은 화폐가 아니라 당신 생명을 지불해서 믿는 이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구원입니다.
제1독서는 사랑의 사도 요한의 편지답게 계속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21).
사랑은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형제와 이웃을,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골자로 짚으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이렇듯 한 뿌리입니다.
오늘 복음에 드러난 예수님의 사명은 전부,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을 향해 있으며, 그들의 온전함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위로해 드리는 일이라고 역설합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빼앗기고 억압 당하는 이들이 하느님의 모상성을 회복하도록 새 출발선을 마련해 주는 일, 새 도화지를 펼쳐 주는 일이 곧 예수님의 사명이자 희년이신 분의 아버지 사랑, 형제 사랑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루카 4,21).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당신의 사명이 지금 여기서 이루어졌다고 하십니다. 그분 존재가 곧 희년이시기 때문이고, 또 주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듣는 이들이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치유와 해방, 기쁨과 자유의 실타래는 내면 저 깊숙한 곳에서 이미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지방에"(루카 4,14)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루카 4,15)
"모든 사람의 눈이"(루카 4,20)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루카 4,22)
오늘 복음 대목에서는 "모두, 모든"이라는 전체를 가리키는 말씀이 네 차례나 등장합니다. 이는 어느 정도의 과장이 포함된 표현이기도 하지만 전체성을 염두에 둔 의도가 담겨있기도 합니다.
이 "모두, 모든" 안에는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뿐만 아니라 동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물론 이방인들도 포함됩니다.
또 시대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와 미래의 인류까지, 잠재적 하느님의 자녀들 전부가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모두의 눈앞에서 구원자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났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희년을 7년이 일곱 번 반복된 후 맞는 50년째 해를 가리킵니다만, 우리는 숫자보다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계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은 저마다 희년을 맞아, 주님의 은혜로운 해가 열리면 주님께서 나의 어떤 부분에 치유와 해방, 기쁨과 자유를 선사해 주시길 바라십니까? 아마 저마다 다르겠지요.
잠시 숙고해 보시고 주님 앞에 그 부분을 펼쳐 놓은 뒤,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 부분에 깊이 머물러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귀를 뚫고 들어와 심장을 관통하고 영혼에 번져갈 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하시는 단호한 선언이 여러분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 해방을 얻고 자유로워져 마음껏 행복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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