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dariaofs 2020. 1. 7. 09:10


오늘 미사의 말씀 안에서는 사랑을 하는 이와 아직 사랑에 서투른 이들의 경계가 잘 드러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르 6,34).

오늘 이 대목은, 예수님께서 파견되었다 돌아온 사도들을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게"(마르 6,31 참조) 하시려고 보내셨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도 쉼이 필요할 정도로 피곤하고 지친 상태였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일행을 쫓아온 군중을 보시자 예수님께서 마음을 바꾸십니다. 아니, 마음이 저절로 군중을 향한 연민으로 움직인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아들로서 사랑 자체이신 그분이 그밖에 달리 취할 행동은 없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사랑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십니다.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마르 6,36).

그러나 제자들 생각은 좀 다릅니다. 예수님께는 군중은 연민을 자아내는 사랑스럽고 연약한 자녀이지만, 제자들에게 군중은 아직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쉼을 방해하고 자칫 먹을 것까지 챙겨줘야 할지도 모르는 부담스런 무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얼른 스승께 그들을 해산하여 자기 필요를 각자 해결하게 하자는 해법을 제시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마르 6,37)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뜬금없고 대책없는 명령에 볼멘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한 데나리온이 농사 일꾼의 하루 품삯이니 이백 데나리온은 꽤 큰 금액이지만 최소 오천 명의 식대라 보면 터무니없이 과장한 액수는 아닐 겁니다.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마르 6,38).

"가서 보아라."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애초에 자기들이 해결할 마음이 없었던 제자들은 가진 것을 점검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당연하지요. 고작 열두 명이 갑자기 길을 떠나면서 챙긴 음식이니 오죽하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이 군중의 필요를 자기 일로 느끼기를 바라시기에 일단 먼저 알아보라고 하십니다. 해결책을 찾는 것은 그 다음 일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 주시려는 겁니다.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마르 6,38).

너무 적어서 과연 무슨 소용이 될까 싶은 양입니다만 오히려 이 적은 양의 음식이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을 더욱 빛나게 할 겁니다.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마르 6,41).

예수님은 제자들의 부족한 사랑을 지적하거나 꾸짖지 않으십니다. 가진 모든 것이 대해 하늘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모습을 보여 주시고, 이 놀라운 기적에 제자들을 참여시키십니다.


제자들은 잘 준비된 사랑으로 나눔의 기적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나눔에 참여하면서 마음에 사랑이 싹트고 자라날 것입니다. 어느 것이 먼저가 되었든 지금 여기는 사랑이 생동하는 현장입니다.

제1독서에서 요한 서간의 저자는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1요한 4,7).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하느님을 아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에게도 하느님의 자녀되는 자격, 하느님을 아는 은총이 주어집니다.


사랑하는 이는 그 자체로 하느님 자녀이고 모상이며 하느님스러움을 지닌, 하느님을 담고 또 닮은 존재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군중을 향해 보여주신 연민과 가르침과 나눔은 사랑의 구체적 행위들입니다. 아직 사랑에 서툴고 미숙한 제자들이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할 모습이지요.

예수님은 군중뿐 아니라 그렇고 그런 제자들에게도 사랑 가득한 눈길을 보내십니다.


논리적이고 인간적인 잣대를 서슬 퍼렇게 들이대며 삶의 과제들을 해결하려는 우리에게 지그시 웃으시며 "가서 보아라"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에는 그저 가엾은 마음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곧 하느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마르 6,42).

얼마나 멋지고 흡족한 말씀인지요. 장정만도 오천 명이 넘으니 따라붙은 가족까지 치면 몇 배는 될 엄청난 무리 중에 굶주린 이도 양껏 먹지 못한 이도 없었다니 말입니다.


 오늘날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충만하고 만족스럽다면 바로 지금 여기가 하느님 나라일 텐데 말입니다!

공현 대축일 후 둘째 날인 오늘, 예수님은 사랑으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이 곧 사랑이시지요. 그러니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 예수님께서 사랑의 하느님을 이스라엘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그저 출렁이는 감정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의 실존을 이해하는 데서 나오는 연민입니다. 신부인 인간을 향해 퍼부으시는 열렬한 사랑과 더불어 이 애틋하고 짠한 연민의 사랑도 하느님의 주종목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연민 가득한 시선과, 가엾이 여기시는 마음 안에 머무릅시다. 질책이나 추궁, 탓이나 실망은 주님 것이 아닙니다.


연민은 하느님의 거대한 섭리도, 원대한 계획도 바꾸는 힘입니다. 결국 우리를 향한 주님의 연민은 우리를 당신의 연민이 되게 하실 겁니다. 우리도 그분처럼 사랑이 될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