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맞이한 주님 세례 축일로 거룩한 성탄의 시기가 마무리됩니다. 주님의 세례는 또 다른 주님의 공현이라 할 수 있지요. 미사의 말씀들 안에는 예수님에 대한 증언들이 가득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 3,13)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시니 그가 놀라 이렇게 여쭙니다. 그의 이런 반응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신분을 증언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나,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때로는 이해 못할 순간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15).
성경에서 "의로움"은 하느님과의 관계성에서 정의됩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종하고 자신의 몫을 다하는 이가 의로운 사람이지요.
사실 하느님이신 분이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에게 세례를 청할 이유도 없거니와, 여느 죄인처럼 세례로 용서받을 죄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래도 요한이 당혹감을 뒤로 하고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인 것은, 이로써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 친히 물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바닷물이 갈라지자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갔다"(탈출 14,22).
예수님은 물을 건너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 이스라엘 민족의 족보 안으로 들어오신 분이십니다.
"주님의 소리 물 위에 머무네. 주님이 넓은 물 위에 계시네. 주님의 소리는 힘차고 주님의 소리는 장엄도 하네"(화답송).
시편 저자는 주님께서 물 위에 머무르시는 순간을 노래합니다. 물은 죽음이기도 하고 생명이기도 합니다. 혼돈이기도 하고 새 질서이기도 하지요. 이 모두는 주님 아래 있습니다. 이 모두를 관장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니까요.
시편 저자가 외친 "주님의 힘차고 장엄한 소리"가 복음 안에서 울려 퍼집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
세례를 받으신 성자와 그분 위에 내려오신 성령, 그리고 당신 뜻을 밝히신 하느님의 소리, 이때는 성삼위 하느님께서 한 자리에서 드러나신 영광스런 순간입니다. 지금 성부 친히 성령과 함께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증언하고 계십니다.
제1독서에서는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가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이사 42,1).
하느님께서 세상을 위해 미리 준비하신 구원경륜은 예수 그리스도에서 완성됩니다. 그분은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이사 42,6)시어 인류를 어둠과 고통에서 구원하실 분입니다.
제2독서는 베드로가 환시를 보고 이방인 코르넬리우스 백인대장의 집에 가서 한 설교 부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사도 10,36).
베드로 역시 유다교의 토양에서 나고 자랐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새로운 길에 들어섰어도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율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 그가 환시와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넘어서 "만민의 주님"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만민의 주님이신 예수님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경계는 물론, 의인과 죄인의 경계도 허물어뜨리십니다. 죄 없으신 분이 세례를 받으신 사실은 우리 모든 죄인들과 연대하시려는 그분 사랑에 기인합니다.
그분은 의인들만의 주님이 아니라 죄인들의 주님도 되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죄인들과 같이 물에 들어가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물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무수한 인간의 죄를 씻어주었던 물이 이번에는 주님 현존으로 오히려 정화되지요.
온 세상의 구원자로 드러나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하느님으로서의 권능을 감추시고 가난한 부부의 아들로 오셨고, 여느 사람들과 같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수난과 죽음의 여정에서역시 그분의 메시아성은 철저히 감추어질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은 소리 높여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는 데서 드러납니다. 자신에 대한 증언을 스스로 침묵하니 하느님께서 친히 증언해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혹 모호하고 불편한 갈등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다면 "지금은 이대로 하자!"고 하시는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마땅히 이루어야 할 의로움의 처음과 끝을 우리가 완전히는 알지 못하니, 예수님께서 하자고 하시는 대로 따르는 것이 믿음일 겁니다. 그 믿음의 결과는 성삼위 하느님의 현존일 것이니, 지금은 하자고 하시는 대로 따릅시다.
언젠가는 우리도 요한처럼 "나는 보았다. 그래서 증언한다."(영성체송)고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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