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dariaofs 2020. 1. 6. 08:14



오늘 미사 말씀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에 당신을 드러내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마태 4,12).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던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의 손에 붙잡힙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뒤의 일이지요.

이 "물러가심"은 헤로데의 영향력을 피하시려는 동선이 되기도 하고, 또 세례자 요한이 닦아놓은 길 위에서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혼의 힘을 불어넣어 주시려는 행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마태 4,13).

이 말씀 이후에 인용된 이사야 예언서 대목(이사 8,23-9,1)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자리를 잡으신 곳은 어둠의 땅이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입니다.


그곳 주민들은 가난과 무지, 우상숭배와 절망 속에서 당시 제도와 질서에 희망을 갖기 어려운 처지를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마태 4,17).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그들을 회개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회개의 이유가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의 주장처럼 율법 준수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계명을 위한 계명 준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그랬듯이 예수님께서도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리시면서, 목전에 도래한 하늘 나라를 누리기 위해 회개를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병자, 허약한 이들,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 중풍 병자..."(마태 4,23-24)

예수님의 손길이 미치는 이들입니다. 당장의 치유와 정상 생활과 사람 대접이 시급했던 이들, 구원이 절박한 이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요.


번듯한 신분이나 풍요로운 재력, 높은 학식을 뽐내는 이들이 아니라 세상에서 고통 받고 소외된 이들이 지금 예수님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공현의 증인이 되는 영광은 우리가 동방 박사라 일컫는 이방인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공생활을 시작하신 뒤에는 이처럼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에게 공적으로 드러나시면서, 주님 공현을 목도하는 엄청난 기회가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러 세도가나 권력자, 부자나 학식 있는 이들을 거부하시거나 밀어내신 것이 아닙니다.


아들의 치유를 청한 카나의 왕실 관리(요한 4,43-54 참조)나, 밤에 그분을 찾은 최고 의회 의원이자 바리사이인 니코데모(요한 3,1-21 참조),


종의 치유를 청한 백인대장(마태 8,5-13)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들이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뿐이지요.

그분 소문이 퍼졌을 때 치유와 구마가 필요한 이들은 지인들 도움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영혼과 육신의 불편이나 결핍을 못 느끼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 사이로 들불처럼 퍼져나가는 이 놀라운 손길에 별 관심이 없었고요. 관심이 없으니 그분을 찾을 일도 없을 테지요.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출몰한 "그리스도의 적"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식별 기준이 제시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영은 하느님의 영이고, 이를 믿지 않는 영은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영입니다(1요한 3,2-3 참조).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입니다"(1요한 3,6).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 주변에 모여와 있습니다.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지요. 완전하지도 특별하지도 출중하지도 못한 우리는 예수님의 손길이 더 필요한 이들입니다.


저마다 어둠과 그늘의 눅눅하고 피폐한 현실을 모르지 않기에 벗어나려 애쓴 궤적을 훈장처럼 지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한 영육으로 서있기 위해서 그분의 신원을 믿고 그분 능력과 사랑에 기댈 수밖에 없는 가련한 인생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공현은 이런 가난한 우리에게 열리는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천 년 전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그런데 스스로 풍족하고 만족스러워 그분께 관심 둘 일 없는 이들에게는 봉인된 공현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지금 주님이 필요하십니까? 그분 말씀과 손길을 간절히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어서 예수님께로 달려가십시오.


그분은 그대에게 온전히 열려 계시고 그대에게 당신을 온전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 공현의 축제는 가난한 우리를 통해서 오늘도 계속 이어집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