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월 4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dariaofs 2020. 1. 4. 06:33



오늘 미사의 말씀들에도 "봄"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증언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의 증언과 듣는 이의 반응 사이에는 반드시 "봄"이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요한 1,35).

요한은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합니다. 그가 예수님에 대해서 "본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현존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현존임을 먼저 들었고, 드디어 보았고, 그래서 믿게 되었으며, 결국 증언하지요(요한 1,32 참조).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35).

요한의 이 간명한 표현에는 예수님의 신원과 사명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없애실 무죄한 어린양이십니다. 요한은 군중, 제자들, 그리고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을 향해 "그분을 보라"고 외칩니다.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요한 1,38).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제자들을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서 보시는 겁니다.


이 시선은 신적입니다. 앎으로 연결되는 인간의 "봄"과 달리 하느님의 "봄"은 이미 약하고 죄인인 인간 실존에 대한 앎으로 가득합니다.

"와서 보아라"(요한 1,39).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보라고 하십니다. 어디에 묵으시느냐는 그들의 물음이 꼭 장소나 소속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예수님은 아십니다. 이제 제자들에게 필요한 건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체험하는 것임을 더 잘 알고 계셨습니다.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요한 1,39).

요한의 제자들이 먼저 "보라"는 스승의 말을 들었듯이, 이번에도 선선히 예수님의 초대에 응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그분의 삶을 보고, 거기서 그분과 함께 묵습니다.

여태까지의 "봄"이 믿고 말하고 듣고 따라가는 행위와 연결되었다면, 여기서의 "봄"은 머무름으로 이어집니다.


머무름은 여타의 행위들에 무게와 농도와 깊이를 한층 더한 차원입니다. 머무름 안에서는 보고 듣고 먹고 냄새 맡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차원의 감각과 행위와 사고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요한 1,41).

제자들의 머무름은 그들을 새로운 스승과 묶어줍니다. 요한의 제자였던 이들은 스승의 권고로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봄"을 타인에게 선포하지요. 그 "봄"과 "머무름"이 그토록 강렬했던 까닭입니다.

그런데 그중 하나였던 안드레아는 "메시아를 보았소"라고 하지 않고 "만났소"라고 말합니다. "만남" 안에는 시각적 "봄"과 전 존재적 "머무름"이 녹아 있습니다.


"봄"이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만남"을 거쳐 마침내 "하나됨"으로 이어지는 것! 이것은 인간적 "봄"이 신적인 "봄"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요한 1,42).

예수님의 "봄"에는 대상에 대한 통찰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시몬을 아십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의 "봄"이 고작 "앎"뿐이라면 우리는 신 앞에서 늘 눈치나 보며 두려움에 떨어야 할 것입니다. 보기만 하고, 알기만 하는 신은 판단자요 심판자일 뿐이니까요.

"시몬을 눈여겨보며"

예수님의 시선에 우리의 시선을 포개어 봅시다.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자비, 연민과 염려, 대견함과 애틋함, 유머와 미소, 눈물까지 함께 느껴봅시다.


그리고 그 시선을 옮겨 우리 자신을 "눈여겨봅시다." 예수님의 시선이 얼마나 깊고 따사롭고 부드러운지요. 얼마나 관대하고 선하며 유연한지요...

우리의 "봄"이 인간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봄", 그 시선에 합해지면, 듣고 묻고 따르고 느끼고 하는 개별적 행위들은 그 안에 자연스레 융합됩니다. 결국 "봄"은 "만남"이 되고 "머무름"이 되어 종래에는 "사랑"이 됩니다.

제1독서에서 요한 서간의 저자는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1요한 3,9).

하느님의 씨! 하느님 모상성이고 말씀이고 사랑이고 자비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완전체인 신을 다 품을 수 없음은 당연하지만, 그 "씨"는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 본성을 닮도록 허용된 가능성이 이미 진즉에 우리 안에 무한히 존재합니다.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관상하는 사랑하는 벗님! 온 세상에 당신을 드러내신 주님 공현 대축일을 준비하며 우리의 "봄",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의 그것처럼 거룩히 정화하고, 순히 가다듬고, 따뜻이 북돋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