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2월 24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

dariaofs 2020. 2. 24. 06:58



오늘 미사의 말씀 안에는 극과 극의 분위기가 공존합니다. 복음에서는 몹시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상황이 펼쳐지고, 제1독서에서는 위에서 오는 지혜를 가리키는 아름답고 영롱한 말씀들이 가득하지요.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 ... 가서 보니 ... 논쟁하고 있었다"(마르 9,14).

방금 산에서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을 접하고 내려온 예수님 일행이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는 다른 제자들을 봅니다. 초막까지 지어 산 위에 머물고 싶어 했던 부푼 꿈이 번잡한 현실과 직면해 곧 쪼그라들고 말지요.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마르 9,19).

예수님 앞에 온 아이는 참 딱하게도 벙어리 영에게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복음에 기술된 아이의 상태를 읽노라면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더러운 영은 수선스럽고 거칠고 폭력적이며 완고하고 과장된 제 모습을 가련한 아이를 통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악의적 모습은 예수님의 권능으로 아이에게서 쫒겨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거칠은 분위기 때문일까요? 군중들까지도 그냥 모여드는 것이 아니라 "떼를 지어 달려든다"(마르 9,25)고 복음사가는 묘사합니다. 그들 역시 희대의 구경거리라도 만난 듯 흥분한 것일까요? 산 아래의 현실은 이처럼 무질서하고 혼돈스럽습니다.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9,23).

예수님께서 아이의 가련한 처지와 아버지의 간청을 보시고 당신이 하실 일을 결정하십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믿음을 요구하시지요. "하실 수 있으면" 하고 조건을 붙였던 아버지의 짐짓 예의바른 척 모호한 태도는 "당신은 하실 수 있고, 꼭 해주셔야 합니다"라는 절절한 믿음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기도가 아니면 ... 할 수 없다"(마르 9,29).

한바탕 전쟁을 치르듯 소란한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하루 동안 펼쳐진 거룩한 변모와 논쟁, 악령의 공격과 구마를 이렇게 마무리해 주십니다.

"기도"

소란스럽고 거칠고 번잡했던 산 아래 현장에서 예수님이 보여 주신 모습은 말 그대로 "기도하는 이"였습니다. 그분은 물으시고 탄식하시고 연민하십니다.


믿음을 요구하시고 악령에게 명령하시며 아이의 미래까지도 보호해 주십니다. 사람들이 논쟁하고 놀라고 집단행동을 하고 속단하는 중에서도 꿋꿋이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제1독서는 위에서 오는 지혜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소개합니다.

"온유한 마음, 착한 삶, 실천"(야고 3,13)
"순수, 평화, 관대함, 온순, 자비, 좋은 열매, 편견과 위선 없음, 의로움"(야고 3,18).

그저 읽기만 해도 좋은 기운이 마음에서 피어납니다. 하느님의 영에서 오는 말씀의 힘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답송의 시편들도 이에 응답하지요.
"완전, 생기, 참됨, 올바름, 기쁨, 경외함, 순수, 영원, 진실, 의로움"

기도하는 이는, 몸은 비록 세상 번잡한 현실에 묶여 있어도 "위에서 오는 지혜"로 무장한 존재입니다.


기도하는 이는 오늘 예수님처럼 악의적이고 혼란 가득하고 폭력적인 격랑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위에서 오는 지혜를 잃지 않고 하느님의 일을 합니다. 기도하는 이가 유지하는 분위기는 위에서 오는 지혜, 주님의 분위기입니다.

기도는 기복적 주술이 아니고 길흉화복의 거래도 아닙니다. 기도했더니 이루어져서 믿는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기에 기도한 것 뿐입니다. 기도는 믿음의 준비 작업이 아니라, 믿음의 표현이고 열매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 9,24).

오늘 아이 아버지가 외친, 절규에 가까운 고백이야말로 아름답고 진실된 기도가 아닐까 합니다. 그는 믿었기에, 이제 그가 청할 것은 아들의 치유가 아니라 더 큰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혼란과 혼돈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 세상에 기도하는 이가 더 절실한 요즘입니다.


달려드는 군중이 몰아치는 두려움과 분노의 격정 속에서도 편견과 위선에 빠지지 않고 우리는 주님의 영 안에서 꿋꿋이 나아가야합니다.


지금 우리가 위에서 오는 지혜를 지니고 유지하는 기도의 분위기가 이 어지러운 세상을 정화하고 안정시킬 하느님의 힘입니다. 오늘 차분히 하느님만이 이 모든 혼란을 잠재울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 안에서 차분히 기도하는 날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