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3월 11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dariaofs 2020. 3. 11. 06:05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수난을 준비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마태 20,18).

오늘 복음의 대목은 하필이면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 예고와 제베대오 아들들의 청탁, 두 주제가 연달아 이어집니다. 누차 밝히시는 당신 사명과, 그에 대한 제자들의 몰이해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지요.

예수님께 예루살렘은 예언자들을 죽인 도시인데 제자들에게는 출세와 영광의 도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성공에 편승해 좋은 자리를 먼저 차지하려고 어머니까지 동원해 눈치 싸움에 돌입한 듯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마태 20,26).

예루살렘 입성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두 제자의 숨은 의도가 드러나 제자단 안에 분열이 시작되니 스승의 마음이 어떠실지 짐작이 갑니다. 그동안의 지도가 물거품이 된 것 같은 실망감과 분노로 불호령이라도 떨어질까 싶지만 예수님은 꾹 참고 간곡한 목소리로 만류하십니다.

"사람의 아들도 ... 섬기러 왔고 ...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속의 질서와 하느님 나라의 질서가 엄연히 다르다는 걸 다시 차근히 일러주십니다. 세속 권력의 힘과 사랑이라는 계명의 힘 역시 헷갈릴 수 없이 다른 세계의 일이라는 걸 알아듣길 바라십니다.


아직 십자가 길에서 제자들에게 버림받으시기 전이지만, 이미 예수님은 외로우실 것 같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재차 섬김과 희생 제사의 소명을 일러 주시지요.

제1독서에 드러난 예레미야 예언자의 모습에 예수님이 어른거립니다.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예레 18,20)

이 질문에서 예레미야의 서러운 울분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이스라엘에 전달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밤낮없이 수고했지만, 돌아은 건 조롱과 모욕, 모함과 박해 뿐이었습니다.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제 입맛에 맞는 말을 해 줄 사제와 현인, 거짓 예언자에게 백성의 운명을 맡긴 채, 하느님의 목소리를 무참히 훼손하고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예레 18,20).

사람에게 이 말을 했다면 괜한 공치사 밖에 되지 않을 터입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말에 귀 기울여 주시는 오직 한 분, 하느님께 온갖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부르짖습니다.


그의 순수하고 충실한 기도와 축복, 용서의 중재는 하느님과 예언자, 둘만의 숨겨진 짝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를 위해 수난하고 죽으신 예수님의 구원 업적을 아는 이들과, 구원의 현실을 누리면서도 이를 모르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희생에 대해 감사하고 닮으려 애쓰는 이들은 물론, 당신을 모르거나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배척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죽으셨습니다.

자기들을 위한 예레미야의 기도를 모르는 가운데, 그를 해치려 음모를 꾸미는 이들이 있듯이, 예수님께서 치르신 몸값의 수혜자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지는 무지일 뿐, 그렇다고 주님께서 당신의 희생 제사를 중단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지는 않으시지요. 그러니 수난의 목전에 이르러서도 움켜쥐고 있는 제자들의 야심 정도가 그분을 흔들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예언자는 그런 운명입니다. 매번 이해 받고 갈채와 덕담에 취해서 살고 있다면 오히려 자신이 진정한 신앙인인지, 예언자적 소명을 살고 있는지 되물어야 합니다.


예언자의 기도와 중재, 축복은 하느님과 자신만 아는 숨은 짝사랑일 때 진짜일 확률이 큽니다.

사랑하는 빗님!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이웃들이 우리의 호의에 어떻게 응답하든 우리는 주님과 함께 묵묵히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성체에 대한 허기와 함께 깊어가는 이 사순절에 "너희는 그래서능 안 된다"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부여잡고 더 기도하고 희생하며 세상의 고통을 보듬고 떠받치는 오늘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