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독서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는 아버지들이 등장합니다. 모두 하느님 아버지를 가리키고 있지요.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 소작인들에게 내주고"(마태 21,37)
이처럼 자기 밭을 소작인들에게 내준 포도밭 주인이 합당한 소출을 받으려 하다가 거부당합니다. 주인이 보낸 종들은 매질 당하거나 돌에 맞아 죽어가지요. 세상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을 다루어 온 방식입니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마태 21,37).
하지만 주인은 그런 소작인들에게서 신뢰를 거두지 않습니다. 자칫 아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 따위는 아예 없는 듯합니다.
그저 자기 아들을 자기처럼 맞이하리라고 너무 순진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의심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비유 속 아버지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이집트 탈출이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 대사건을 준비하는 성조의 일화가 펼쳐집니다.
"자, 내가 너를 형들에게 보내야겠다"(창세 37,13).
요셉을 편애하던 야곱은 바로 그 때문에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는 줄도 모르고 형들에게 그를 심부름 보냅니다.
아마 알았어도 형제간에 있게 마련인 소소한 질투 정도로 여겼을 테지요. 설마 요셉을 죽이고 싶어할 정도의 증오였다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겁니다. 오늘 복음 속 포도원 주인처럼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한바탕 비극적 사건이 두 독서 안에서 벌어집니다.
요셉은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은전 스무 닢에" 이집트로 팔려가고, 포도밭 주인의 아들은 소작인들에 의해 "포도밭 밖으로 던져"져 죽음을 당합니다. 그리고 성부의 외아들 예수님은 "은전 서른 닢"에 악인들 손으로 넘겨지실 것입니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마태 21,42).
고통스런 사건이 있었지만 결국 요셉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파스카 사건을 위해 준비하신 존재로 역사에 새겨집니다.
포도밭 주인의 아들은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까지 포도밭이 개방되게 만든 단초가 되지요. 또 우리의 예수님은 완전한 희생 제사를 통해 구원의 문을 이스라엘을 넘어 온 인류에게 활짝 열어젖히십니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오늘 만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죄로 기울어지는 우리의 습성과 거듭되는 배반, 죄악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우리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으시는 하느님! 속고 또 속아 당신까지 해쳐도 또 믿어 주시는 분!
그분은 아드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우리에게 거듭거듭 아드님을 보내십니다.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부활의 은총을 인류에게 주시고자 당신 존재가 무너지는 희생 제사를 기꺼이 허락하십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민족적 정통성을 넘어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소작인으로" 포도밭을 얻게 된 이들들이지요.
자격도 못 되는 우리에게 쏟아지는 아버지의 신뢰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 신뢰에 뭐라도 응답해 드리고 싶은 오늘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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