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갈망'에 대해 던지십니다
제1독서에서는 목마름의 아우성이 들립니다.
"목말라 죽게 하려고 그랬소?"(탈출 17,6)
광야 한복판에서 물을 얻을 수 없자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불평합니다.
목마름에 지친 그들은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탈출 17,7) 하며 자기들을 이끌어내신 하느님을 의심합니다. 영성생활에서 겪는 갈증 역시 많은 경우 하느님의 부재처럼 다가오지요.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탈출 17,6).
주님께서 목마름이 극에 달한 그 자리에 당신이 계시겠다고 하십니다. 사실 영적인 갈증과 허기는 그만큼 하느님을 갈망하고 갈구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영적 목마름이야말로 주님 현존의 증거입니다. 아직 불완전한 우리 영혼에게 하느님은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나는 바닷물 같고, 보아도 보아도 더 보고 싶은 절경과도 같으십니다. 구분과 온전한 일치에 도달할 때까지 그럴 겁니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9).
한낮 뙤약볕 아래서 걷다 지치신 예수님께서 먼저 물을 청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육신을 지니셨기에 목마름도 우리와 같이 느끼십니다.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저에게...?"(요한 4,9)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요한 4,11)
우물가에 나온 사마리아 여자의 반응이 그리 곱지 않습니다.
자의건 타의건 남의 이목이나 인습에 매이지 않고 나름 자유롭게 살았을 법한 사람인데도, 목마르다는 사람에게 선뜻 물 한 바가지 길어 건네기보다 신분, 소속, 자격, 수단, 장소 등등
이것 저것 따지는 걸 보니 의외로 틀이 많은 사람같이 보입니다.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요한 4,23).
사마리아와 유다는 왕조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성소를 각각 달리합니다(1열왕 12,20-33 참조). 게다가 사마리아를 멸망시킨 아시리아의 이민과 혼혈정책 탓에, 순혈주의를 자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마리아는 상종 못한 이방인에 불과했지요.
이 편협한 분리의 틀을 예수님께서 깨뜨리십니다.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요한 4,21) 진정한 예배가 이루어질 것이라 하십니다.
장소나 신분에 매이지 않고 오직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를 향하고 일치하는 사랑의 제사를 의미합니다.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이는 그분을 장소나 신분, 제도나 이념의 틀로 가둬두지 않습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 4,34).
예수님께서 고착된 틀을 하나 더 깨뜨리십니다. 당장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생명을 유지시키는 양식이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물리적 양식을 부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생명을 유지하는 진정한 양식임을 일러주시는 겁니다. 아버지의 뜻과 그분의 일은 예수님께서 모든 걸 바쳐 추구하신 사명이지요. 규정보다 영과 진리가, 의무보다 사랑이 움직인 결과입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의 평화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밝힙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로마 5,1).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는 하느님 현존의 분위기입니다. 주변에서 쉽게 보듯이, 세상 물질과 권력에 목말라하며 질주하는 이들에게는 평화가 없지만, 하느님과 그분 말씀을 갈망하는 이들에게는 평화가 깃듭니다. 갈망함으로써 이미 그분을 차지했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벗님! 목이 마르다면 주님께서 곁에 계시다는 증거이니 기뻐합시다. 허기가 진다면 주님의 뜻을 실천하고 싶다는 뜻이니 또 기뻐합시다. 우리는 "물이 솟는 샘"(요한 4,14)과 "(세상이) 모르는 양식"(요한 4,32)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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