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3월 8일 사순 제2주일 - 오상선 신부

dariaofs 2020. 3. 8. 06:10



오늘 미사의 독서들 안에는 저마다의 명암이 공존합니다.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마태 17,1)

예수님께서 세 명의 제자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시어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곧 맞이하실 수난 전에 당신 신성의 영광을 드러내 보여주신 겁니다.


그동안 예수님 곁 가까이에서 먹고 자고 배우며 살아온 제자들에게 지금의 빛나는 모습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게다가 자기들을 덮은 구름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려온 소리까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마태 17,6).

신의 현현 앞에 선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자기 체험과 이해 범주를 벗어난 사건 앞에서 그것이 아무리 빛나는 영광의 모습이어도 두렵기는 매한가지일 겁니다.


감히 쳐다보기도 어려울만큼 눈이 부실 지경의 빛 앞에서 어둡고 더러운 자기의 현실이 더 선명히 떠오를 테니까요.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마태 17,9)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은 제자들을 고무시키기도 하고 근심이 되기도 하는 양가적 요소가 될 겁니다. 이스라엘의 율법과 예언서를 상징하는 위대한 성현인 동시에 누구보다 처절하게 혹독히 그 대가를 치르며 하느님을 증거한 대표적 존재들이니까요.

거기에 더해 스승이 죽는 이야기까지 또 나옵니다. 제자들이 이해했건 이해하지 못 했건 이미 예수님은 수난 예고를 한 번 하신 상태였지요(마태 16,21 참조).


방금 체험한 신비경에 들뜨다 말고 찬물을 끼얹어진 듯합니다. 잠시지만 상승과 하강의 편차가 마치 롤러코스트 같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어느 모습도 감추지 않으십니다.

제1독서는 아브람의 부르심 대목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12,3).

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누구라도 그 자신이 복의 근원이 된다면 놀랍고도 영광스러울 겁니다.


아브람은 원래 목적지였던 가나안 땅에 이르지 못한 채, 본고장 칼데아 우르도 아닌, 하란에 몸붙여 사는 이방인에 불과했고 더군다나 자손도 없는 처지였습니다(창세 11,27-32 참조). 언감생심 꿈도 꾸어보지 못했을 영예에는, 그러나 조건이 따릅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

아브람은 무엇보다 먼저 익숙하고 안정된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야 합니다. 안정은 지금 누리는 현재이지만, 복은 불확실한 미래입니다. 당시 상황으로는 친족의 보호를 떠나는 것은 위험에 자신을 고스란히 내맡기는 형국입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복음의 양면성을 솔직히 드러냅니다.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2티모 1,8).

직설화법입니다. 요즘 말로 돌직구라 하지요. 감언이설로 상대를 안심시키거나 착각하게 만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합니다. 복음을 믿고 수호하는 길은 고난의 길임을 에둘러 피하지 않고 던집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2티모 1,10).

하지만 사도 바오로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곧 새 희망을 제시합니다. 그것도 "환히"!!! 드러냅니다. 이 "환히"라는 단어는 몇 절 안되는 제2독서 안에 두 차례나 반복됩니다. 마치 복음의 "빛나다"라는 반복된 표현을 반사하듯 말이지요.

빛과 어둠은 한 세트입니다. 그래서 하나만 선택할 수 없지요. 그것이 인생이건 신앙이건 다른 어떤 영역이건 간에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닙니다.


상승과 하강, 영광과 수치, 생명과 죽음,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성취와 상실... 약하고 죄인인 우리는 그 한가운데를 아슬아슬 균형 잡으며 걷고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보여 주신 빛나는 영광의 얼굴 안에서 십자가를 볼 수 있기를 빕니다. 또한 일그러진 고통의 신음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속삭임을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왜냐하면 빛과 어둠은 취사선택으로 하나만 골라낼 수 있는 개별 포장 세트가 아니라 한 덩어리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좀더 인내하며 주님을 모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주일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로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