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3월 5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dariaofs 2020. 3. 5. 06:11



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청원 기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제1독서는 에스터르의 기도 일부분입니다. 성경 속 아름다운 기도들 중 하나로 꼽히지요. 당시 유다인들이 재상 하만의 음모로 모두 몰살될 위험에 처합니다.


유다인 혈통을 밝히지 않은 채 왕비 자리에 발탁된 에스테르는 양부 모르도카이의 요구로 목숨을 걸고 크세르크세스 임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합니다. 이 기도는 임금의 허락 없이 어전에 드는 모험을 감행하기 전에 드린 기도입니다.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에스 4,17-25).

사람은 때때로, 또는 자주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적 존재이고 더군다나 신앙 안에서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어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실존적 조건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에스 4,17-14).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에스 4,17-25).

독실한 유다 처녀로 교육받으며 성장한 덕에, 유배지에서 이방인 임금의 왕비로 살아가면서도 에스테르의 신관은 이스라엘 신앙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그녀는 유일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그러한 "당신 자신을 알리시라고"(에스 4,17-23 참조) 요청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 청하는 자세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청하여라 ... 찾아라 ... 문을 두드려라"(마태 7,7).

우리는 이처럼 적극적으로 아버지께 다가가야 합니다. 하지만 청하고 찾고 두드리기 전에 먼저 무엇이 필요한지 제대로 파악해야겠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그것을 주시려는 하느님과 우리의 주파수가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 7,11)

"좋은 것을 더 많이" 이것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그분의 관심사는 우리의 행복이기에 무얼 더 챙겨 주고 도와주어야 할지 늘 살피십니다. 우리 자신보다 더 잘 보고 아시지요.

문제는 우리가 그분이 주신 "좋은 것"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만족하지 못하고 줄곧 졸라대지요. 우리가 이기적이고 시야가 좁은데다 성급해서 그렇습니다.


유일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고작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자기 영광이나 청한다면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준비하고 계신 그분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에스테르 왕비의 기도에서 배웁시다. 그녀의 기도는 동족의 구원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절박함에서 나왔습니다. 기도는 나와 이웃이 서로 별개의 섬이 아니라 함께 연결된 유기체임을 아는 데서 더 절실해지고 진정성 넘칩니다.

청하는 내용의 수혜자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향할 때 하느님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드리는 기도가 됩니다.


내게 좋은 것들은 이미 주님의 선물 보따리 속에 마련되어 있는데, 우리가 자기를 잊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주님 앞에 데려갈 적마다 아버지의 흡족한 축복과 함께 풀려나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사랑하는 벗님!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축복 받기를 바란다면 먼저 이웃을 축복해 주는 건 어떨까요? 그들과 함께 반드시 축복을 받을 겁니다.


신앙, 성장, 건강, 행복, 평화, 일치를 바란다면 먼저 이웃을 위해 빌어 주면 좋겠지요. 그들과 더불어 받을 겁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바가 주님 마음과 한결 가까워져 갈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들을 위한 바람에 묻혀버린 나의 바람을 용케 아시는 분이십니다.

벗님이 잘 하고 계시듯 서로를 위한 기도가 더욱 절실한 요즘입니다. 이웃과 세상을 위해 더 열렬히 주님께 달아드는 하루를 엮어갑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