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3월 3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dariaofs 2020. 3. 3. 06:40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해야 할 말, 해야 할 일에 대하여 배웁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0).

세상과 인간을 향해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은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입에서 발설되는 말씀에는 하느님의 뜻과 사명이 담겨 있어, 그저 헛되이 허공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에 ...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

반면 아직 하느님과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말은 자칫 "빈말"이 되기 쉽습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미사여구로 치장해 장황하게 쏟아내는 말에는 진심이 담기기 어렵습니다. 실행 없이 일단 쏟아내고 보는 인간의 말은 듣는 이의 귀에조차도 남지 못하고 포말처럼 사라질 허상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의 부귀, 영화, 권력, 건강, 명예의 주인이라 여겨 그걸 꼭 얻어내고 싶다면 사실 그분께 청하고 싶은 건 무궁무진할 겁니다.


그분과의 관계보다 그분 주머니에 관심이 더 많다보니, 말로 그분을 추켜세우고 구스르다가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식으로 기도가 흐르겠지요. 들으시는 분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대화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 6,9).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인간이 하느님께 청해야 하는 골자가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 일용할 양식, 용서, 유혹과 악에서 보호..."

이 기도에 가만히 머물러보면 거의 대부분의 청원이 하느님께서 해주셔야 할 영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딱 하나, "용서"만 빼고 말이지요. 용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콜라보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신 뒤 14절부터 "용서"에 대해 덧붙여 설명하십니다. 용서는 주님의 기도 안의 다른 청원들과 달리 인간이 협력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말이 빈말이 되지 않으려면 주님의 기도 안의 청원에 실제로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가 용서하면 아버지도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서받은 우리가 또 용서하게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용서할 줄 아시고 앞당겨 우리에게 용서를 베푸시지요. 용서가 용서를 부릅니다. 이쯤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용서는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그분의 "앎"이 곧 "이루어짐"이니, 우리는 우리에게 절실한 바를 충분히 받고 또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편에서 할 수 있는 바를 성심껏 준비합시다. 용서가 그 중 하나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