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2월 28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dariaofs 2020. 2. 28. 05:37



오늘 말씀은 단식 이야기입니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마태 9,14).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쭙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단식은 굶는 행위입니다. 먹는 행위를 통해 인간은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식욕과 쾌락을 충족합니다.


이를 일시적으로 끊음으로써 자기 욕구를 다스리는 고행을 통해 하느님을 섬기는 행위가 곧 단식의 일차적 의미입니다.

"많이"

그들은 단식을 수량으로 매겨서 표현합니다.


좀 더 자주 굶는다는 뜻도 되겠고 그만큼 욕구에 초연한 의인임을 은근히 드러내는 자기 과시도 되겠지요.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의미로 단식에 접근할 때 가능한 표현입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 9,15).

우문현답입니다. 예수님 답변에 등장하는 "단식"은 문자적으로는 앞의 질문의 "단식"과 같은 형태이나, 그 속뜻은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 제게는 이 "단식"이란 말씀이 "사랑"이라고 들렸습니다.

그 이유는 제1독서에 드러납니다.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이사 58,5)

주님은 "눈 가리고 아옹"하는 형식적 단식을 혐오하십니다. 마음에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자비와 정의, 사랑 없이 굶으며 고행한들 주님께는 역겨운 쇼에 불과합니다. 사람 눈에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주님 눈에는 어림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이사 58,6)

주님은 해방과 자유, 나눔과 환대, 연민과 자선이 당신이 좋아하는 진정한 단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식이 곧 "사랑"일 때 주님 눈에 드는 참 단식인 것입니다.

단식은 일차적이고 문자적인 의미로 위장을 비우고 혀의 탐욕을 제어하는 굶는 행위이나,


그 영적 의미는 신랑을 빼앗긴 이들이 가난한 이들 안으로 사라지신, 그들 속에 숨으신 신랑 예수님을 찾아 그분께 사랑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전자의 비뚤어진 결과가 과시와 타인 단죄라면, 후자의 결과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그 자체로 참 단식의 보상입니다.

"나를 더 사랑해다오."

예수님께서 이 단식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에게 청하십니다. (저는 감히 청하신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너 자신만 사랑하지 말고, 자아에 대한 애욕을 줄이고, 나를 빙자해서 자기 만족에 빠지지 말고, 나를 더 사랑해다오!"

예수님은 이 사순 시기가 가난한 이웃을 특별히 사랑하는 단식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온 나라가 두려움과 불신으로 동요하는 이때, 곤경에 빠진 이웃 안에 숨어 계신 신랑께 눈길을 돌리라고 하십니다.

본의 아니게 미사를 단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님 향한 상실감과 그리움을 함께 키워가고 있을 여러분을 떠올리며 기도합니다. 이 시국에서 성직자 수도자가 누리는 미사의 은혜가 얼마나 큰 특혜인지 두렵게 절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의 사랑과 절원을 담아 더 소중히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 향한 사랑과 갈망으로 이미 우리의 미사 안에 함께 하고 계시니, 우리는 하나입니다. 힘 내십시오! 더 사랑하십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