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은 사순 시기를 막 시작한 우리에게 선택을 촉구하십니다.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루카 9,23)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오려는 사람에게 "자신"과 "십자가" 사이에서 선택을 하라고 하십니다. 버려야 할 것은 "자신"이고 지녀야 할 것은 "십자가"임이 명백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자신"입니다. 자아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은 쉽게 감지할 수 있지요.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며 현실적인 목소리인 자아는, 그 결과까지는 모르더라도 당장 가려운 데를 긁어 주고 욕구를 읽어 주며 스스로를 보호해 주는 듯 느껴지지요.
어쩌면 예수님은 바로 그런 이유로 "자신"을 버리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육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가치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마냥 그것만 추구해서는 곤란하니까요. 하느님 마음을 나누어 받은 인간은 태생적으로 영적 세계에도 동시에 발을 담그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영의 현실은 우리가 안주하고픈 자아를 초월하라고 재촉합니다. 그저 편하고 쉽고 풍요롭고 안전해 보이는 땅에 주저앉아 있지만 말고, 일어나 금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합니다.
마냥 "자신" 안에 눌러 앉은 채로는 우리 각자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소명은 안전지대 밖에서 불편하고 거북해 보이는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소명을 완수하려면 믿음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지요.
제1독서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신명 30,15).
그리고 19절에 이를 반복하면서 "행복" 자리에 "축복"을, "불행" 자리에 "저주"를 놓습니다.
죽음과 불행, 저주가 눈에 뻔히 보인다면 누구도 그것들을 선택하지 않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것들은 자아를 매혹시키는 달콤하고 수려한 포장지로 잘 싸여 있습니다. 쓴 약을 먹기 쉽도록 외피를 묻힌 당의정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특별히 선택받은 계약의 백성이면서도 우상숭배와 형식주의에 걸려 넘어진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 길의 끝에 죽음과 불행, 저주가 도사리고 있는 줄 모르고, 당장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쉽고 풍요로운 길을 선택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요.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신명 30,20).
날마다 우리에게 던져진 선택지 중에서 어떤 것이 생명, 행복, 축복이고 어떤 것이 죽음, 불행, 저주인지 모호할 때가 있지요. 그럴 때는 주님을 선택하면 됩니다. 주님이 우리의 생명이시니까요.
우리 주님이 누구와 있는지, 무엇을 지고 계시는지, 어떤 평판을 듣는지, 적들은 어떤 부류이고 벗들은 어떤 부류인지, 어디 사시고 얼마나 가지셨는지 그분을 눈여겨 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이제 더 이상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압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에서 무엇이 생명이고 행복이며 축복인지... 한 해를 돌아 다시 맞이한 이 사순 시기는 부족한 우리에게 또 다시 새로운 기회를 주시려는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그 축복을 살아갈 때 '은혜의 때'가 되고 '구원의 날'이 될 겁니다. 그러니 날마다 조금씩 더, 생명, 행복, 축복의 길로 무게중심을 기울이며 사순 시기를 채워가도록 오늘도 새롭게 분발합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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