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해서는 안 된다."
제1독서인 레위기 전반에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해야 한다"라는 표현보다 압도적으로 빈번하게 등장하니 읽는 이를 주눅들게 만듭니다. 자칫 말씀 안에서 주님 마음을 만나기보다 자기 성찰의 곁길로 빠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무수한 "해서는 안 된다"는, 시작과 끝에 있는 두 문장의 부차적 세부 규정들입니다. 핵심은 다음의 두 문장에 담겨 있습니다.
먼저 그 시작은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1)이고, 그 마침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입니다.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그분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거룩함을 입어야 하고,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를 닮은 자녀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제시된 무수한 금지 명령들은 거룩함과 사랑이 완성되면 그 안에 하나로 녹아들어 세세한 사항을 열거하는 것조차 무색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은 유명한 최후의 심판 대목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34).
작은 이들에게 선행을 베푼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와서"라고 하십니다. 반면 작은 이들을 외면했던 악한 자들에게는 "나에게서 떠나"(마태 25,41)라고 하시지요. 이 대비에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방향성이 입력되어 있습니다.
작은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손을 내민 이들은 이미 지상에서부터 줄곧 주님을 향했던 것이고, 작은 이들을 피했거나, 적극적으로 나쁘게 대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자들은 줄곧 주님의 반대쪽을 향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주님을 섬긴 이들은 그곳에서도 주님을 마주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주님께 등돌린 이들은 그곳에서도 주님 부재의 현실을 살게 될 것입니다. 지상에서의 방향성이 결국 하느님 나라에까지 이어져, 현세에서 살아온 대로 종말 이후에도 살게 되리라는 뜻이지요.
삶의 가르침은 하지 말아야 할 부정적 범례들을 통해서도, 또 해야 할 긍정적 범례들을 통해서도 제시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언어 형식이라는 껍질 속에 담긴 핵심을 알아듣는 것이지요.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
주님께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창조 때부터 모든 인간은 거룩하고 선하게 사랑의 존재로 지음 받았으므로 하느님 나라가 모든 인간을 위해 준비된 것이고, 하느님 나라는 당연히 모든 인간의 차지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본래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작고 보잘것없고 약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연민, 사랑은 모든 인간의 본성이고, 그들에 대한 회피나 억압, 소외와 무시는 악을 향한 탓으로 고착되는 어둠의 현실입니다.
그러니 금지 명령들과 최후의 심판 이야기로 엮인 오늘의 말씀들은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려고 배치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래 어떤 존재이며, 그래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펼쳐보여 준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주님을 향한 만큼 그날 그분은 "와서 나를 차지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지요? 국가적 재난으로 잠시 유보된 성체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으로 더 강렬히 주님을 향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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