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와 복음에는 요나 예언자가 등장합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배 속에서 보낸 사흘은,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사건의 표징입니다.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요나 3,3).
오늘 듣는 대목 이전에 이미 엄청난 사건이 한바탕 펼쳐졌지요. 주님의 부르심에 요나는 도망쳤고 폭풍을 만나 바다에 빠져 큰 물고기 배 속에 갇혔다가 다시 육지로 토해진 뒤의 일입니다. 요나는 죽음의 시간을 지나 이제 순명의 인간으로 변했습니다.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요나 3,5).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 도시의 사람들이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히브리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요나 3,3)을 고작 하룻길밖에 걷지 않았는데 온 도시가 그의 말을 믿고 참회의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진노를 ...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요나 3,9).
니네베 임금이 백성에게 함께 회개하자고 촉구합니다. 그런데 그의 말에서 불확실성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확실성 중에서 단 몇 퍼센트의 가능성이라도 부여잡고자 엎드린 니네베 사람들의 모습은 믿음 앞에 갈팡질팡하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믿음은 결국 모험이니까요. 백 퍼센트 확실성의 결과는 믿음이 아니라 지식일 뿐입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루카 11,32).
복음에서 예수님이 니네베 사람들을 칭찬하십니다. 그들이 요나라는 한 인간을 보지 않고 그가 전하는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받았음에도 "요나보다 더 큰"(루카 11,32) 예수님의 존재와 말씀을 외면하는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업신여기는 이방인들의 단죄를 받을 것입니다.
요나의 표징에는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요나는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죽고 하느님의 목소리로 거듭 났지요. 물론 이 사건 이후에도 요나다운 고집과 불평이 싹 사라진 건 아니지만, 어쨌든 물고기 배 속의 사흘은 새로운 탄생을 가져왔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요나의 표징은 우리에게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파스카의 여정을 두려움 없이 마주하라고 초대합니다.
아울러 이러한 파스카의 여정을 거쳐 주님의 사람이 된 존재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라고 촉구합니다. 그에 대한 선입견에 발목 잡히지 말고, 사람을 뛰어넘어 주님을 보고 들으라고 하시는 겁니다.
단순한 믿음과 겸손한 참회... 오늘은 니네베 사람들에게 한 수 배웁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복음 환호송) 하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
설령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회개한다 해도 괜찮습니다. 동기와 시작이 어떻든간에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는 분입니다"(요나 3,10 참조).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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