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돌아섬"을 제시하십니다. "돌아섬"이 곧 회개의 시작입니다.
"돌아서서"(에제 18,21.23.27.28)
제1독서에서 주님은 여러 차례 "돌아섬"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바는 악인이 자기의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주님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는 "돌아섬" 이전의 모든 불의를 용서받게 됩니다. 그의 죄악이 주님께 더 이상 기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돌아섬"도 있습니다.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주님께 그의 정의는 잊혀지고 나중에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으리라는 것이 냉정한 현실입니다. 그러니 돌아서되 올바른 방향쪽으로 돌아서는 것이 관건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의로움을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마태 5,20).
유다 종교 지도자들의 의로움은 율법에 대한 그들의 열성을 드러내고 증명합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의로움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에서 더 요구하십니다. 신분상으로도 그렇거니와 정식 종교 교육도 받지 못한 제자들에게 "그들을 능가하라"고 촉구하십니다.
물리적 살인만이 불의가 아니라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바보, 멍청이라 하는 인격 살인까지 그에 버금가는 불의라고 하십니다. 육적 생명을 앗아가는 죄만 죄가 아니라 영혼의 생기를 빼앗는 위해 역시 엄청난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므로"(마태 5,23)
예수님께서는 두 개의 권고를 방금 들은 엄격한 말씀의 해법으로 제시하십니다.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화해하라는 것과, 자기를 고소한 이와 얼른 타협하라는 것입니다. 둘 다 "멈춤"과 "돌아섬"이 요구되지요.
사실 관계가 어그러지고 상처까지 입게 되면 화해나 절충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성과 윤리를 떠나 자존심으로 자기 입장을 밀고 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지요. 그때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고, 여태까지 치달아온 방향을 돌이켜 서로에게 생명이 되는 방향으로 재조정하라고 권고하시는 겁니다.
이제는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 극으로 치닫던 방향을 돌려 일단 서로를 향하고, 그 다음은 대화가 되건 합의가 되건 만나는 겁니다. 중요한 건 그들이 방향을 바꾸어 돌아서고, 승패와 상관없이 그간의 제 길을 돌이켰다는 데 있습니다.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나는 죄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죄인이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영성체송).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서기를 바라십니다. 이 말씀을 생명을 걸고 하시니 어마어마한 무게가 느껴지지요. 실제로 주님은 우리 회개를 위해 당신 생명을 거셨습니다.
돌아섬은 변절이나 줏대 없음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잘못된 방향을 밀어붙이는 것이 죄를 쌓는 무모한 어리석음이고 상대를 죽이는 악이지요. 하물며 하느님도 우리 같은 죄인 때문에 마음을 바꾸시고 징벌을 돌이키십니다.
제단의 예물보다 시급하고 재판장의 판결보다 위엄 있는 것이 생명입니다. 서로의 생명을 북돋우고 살리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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