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과 맺은 관계가 다른 존재들에게 어떻게 연장되어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제1독서인 신명기에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이 언급됩니다.
"주님을 두고 오늘 너희는 이렇게 선언하였다"(신명 26,17).
"주님께서는 오늘 너희를 두고 이렇게 선언하였다"(신명 26,18).
서로 마주 선 두 존재가 각각 선언을 통해 이처럼 계약을 체결합니다.
"주님께서 너희 하느님이 되시고"(신명 26,17)
"너희가 그분 소유의 백성이 되고"(신명 26,18)
이것이 바로 계약의 골자입니다. 이 계약을 통해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서로에 대한 권리와 의무가 발생하지요. 그 세부 규정들이 신명기 전반을 채우고 있습니다.
복음 속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따라야 하는 율법 규정의 한계를 넓혀 주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고 네 원수를 미워해야 한다"(마태 5,43).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분명 율법에 등장합니다(레위 19,18 참조). 하지만 "원수를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저 살인 등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복수가 동태복수법의 형태로 공동체 안에 존재함을 묵인 내지 인정하는 정도지요.
그래도 선량하게 살고자 애쓰는 이들은 십분 양보해서 원수를 미워하지 않는 정도의 아량과 선의를 지니려고 노력합니다. 그것만도 큰 희생과 포기가 따르는 자기 비움의 수행일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여라"(마태 5,44).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에 그치지 않으시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보복과 복수가 공동체와 자기를 보호하는 미덕인 문화 속에서, 자기애와 일차적 감정에 충실한 우리 인간에게 실로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5).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녀는 아버지를 닮기 마련이니까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 자기 형제들에게만"
그런데 하느님은 "~에게나" 방식으로 존재를 대하시고, 사람은 "~에게만" 방식으로 존재를 대합니다 아버지와 자녀인 우리 사이에 이처럼 어마어마한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에게나" 방식은 포용적인 반면, "~에게만" 방식은 선택적이고 차별적입니다. "~에게나" 방식의 접근에는 제외되는 대상이 없지만, "~에게만" 방식은 구별부터 하고 봅니다.
주체의 호의와 적대감에 따라 대상의 그룹이 선명히 나뉘지요. "~에게나" 방식은 상대를 고려하는 반면, "~에게만" 방식은 자기 중심이기에 그렇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요구된 "거룩함"이 이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완전함"을 입습니다. 이 둘은 별개의 특성이 아니라 한 분이신 하느님의 '아버지다움'입니다.
물론 여기서 완전함은 모든 면에 철두철미한 완벽함과는 다릅니다.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인간 존재에게 완벽함이란 불가능할 뿐더러, 공동체적으로 보면 무용하기까지 합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시각으로 모든 불완전함을 관상하고 연민하는, 아버지의 자녀다운 품성이 "완전함"이고 또 "거룩함"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세상에 필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완전함입니다. 그리고 이 완전함이야말로 거룩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 모두는 이 거룩한 완전함의 수혜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 중에 있을 때라도 해가 우리를 비껴가지 않았고 비도 우리를 건너뛴 적이 없으니 말입니다. 아버지 사랑에서 제외된 적이 없는 우리가 좁고 편협한 시각 밖으로 감히 누구를 밀어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더 배우고 획득하고 익힌들 완전해질 수는 없습니다. 신앙인의 완전함이 지식이나 능력, 기술, 겉모습에 기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버지 자녀다운 완전함은 가진 바를 나누고 가난을 선택하며, 경계를 허물고 미움을 내려 놓고 차별을 그치는 비움으로만 채울 수 있는 역설적 신비입니다.
그러니 각자 삶의 영역에서 제외 목록이 적으면 적을수록 완전함에 더 가까이 가는 것 아닐까요? 아버지의 완전함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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