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분명 예수님인데 그분에 대한 이야기만 나올 뿐, 정작 그분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요한 7,40).
"저분은 메시아시다"(요한 7,41).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요한 7,46).
예수님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분의 "말씀"에서 희망을 봅니다. 예언자적이고 메시아적이며 새 창조적인 기운이 그분 말씀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비록 종교 지배층만큼 배우지 못했어도 사람이 진정으로 사람을 알아볼 때는 지식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하게 마련이니까요.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요한 7,41)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오지 않소"(요한 7,52).
반면 예수님의 신원을 의심하고 반대하는 이들은 오로지 "출신"에 매달립니다. 과연 성경에는 이스라엘을 구하고 다스릴 분이 다윗의 후손에서 나온다는 대목이 곳곳에 등장하지요(2사무 7,12-17; 시편 89,4-5; 예레 23,5).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호적 등록 덕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심으로써 성경의 내용이 이루어지게 된 섭리를 알 턱이 없습니다.
"우리의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요한 7,51)
니코데모가 용기를 내어 이의를 제기합니다. 율법을 들어 예수님을 단죄하는 이들에게, 율법에 근거해 예수님께 일단 기회를 드려보자는 의미였을 겁니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요한 7,52).
하지만 그들은 이 말조차 무질러 버리지요. 유다인들은 율법과 예언서의 권위를 철저히 믿습니다.
그런데 율법의 권위를 빌어 타인을 단죄하던 그들이, 율법에서 제시하는 절차와 과정에 대해서는 못 들은 척, 이번에는 예언서의 권위에 기대러 그쪽으로 건너갑니다.
사람을 살리려 성경 안에서 길을 찾기보다, 사람을 겨누기 위해서 성경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권력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사람이 되신 말씀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뜻인 말씀까지도 손아귀에 넣고 싶은 듯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예레미야의 기도가 계속됩니다.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예레 11,19).
이사야서에 나오는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에서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이사 53,7)의 표상이 등장하지요. 파스카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운명이 예언자의 운명과 오버랩 됩니다.
악을 이기기 위해 예언자들이나 주님이 택하신 길은 악에게 똑같은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하느님 뜻에 자신을 잠자코 내어맡기는 것입니다.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겼으니"(예레 11,20).
예레미야는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오로지 주님께 의탁합니다. 설령 죽음의 선고가 내려진다 해도 이미 주님 손으로 넘어간 송사이니 괜찮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니코데모가 배려했던 변론의 기회조차 묵살된 예수님도 마찬가지셨겠지요.
"우리는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해방되었네"(영성체송).
사람들은 예수님이 없는 데서 예수님에 대해 논하고 단죄하고 심판합니다. 이 모두를 모르실 리 없으신 예수님은 그저 묵묵히 당신의 길을 가십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꿋꿋이 견지한 어린양의 온전한 의탁은 거룩하고 순결한 피를 세상에 수혈할 영원한 제사입니다. 세상은 그 피로 씻기고 해방되고 구원됩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말씀을 통해 주님 수난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순히 듣고, 주님과 함께 침묵하며, 기꺼이 주님의 길을 동행할 은총을 청하며 사순 제5주일을 준비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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