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dariaofs 2020. 3. 25. 07:08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네 역사를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가, 함께 계시지 않는가"로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환난의 때에는 주님께서 더 이상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슬퍼하고, 회복의 때에는 다시 오신 주님을 기리며 고개를 쳐들었지요. 오늘 미사의 말씀들은 주님 현존을 묻는 인간에게 주시는 주님의 자상한 답변이 될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임마누엘의 선포가 울러퍼집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이사 7,14; 8,10).

당시 유다 임금 아하즈와 그의 백성은 예루살렘을 치려는 아람과 이스라엘로 인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때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사야 예언자를 보내시어 경고와 함께 "임마누엘"의 희망을 전하십니다.


유다 임금과 백성에게 "임마누엘"은 주님께서 지금 백성과 함께 계신다는 위안이요 승리의 표징인 동시에, 앞으로 오실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특정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9).

제2독서에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하길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 그리스도의 강생으로 실현됨을 드러냅니다. 세상에 오신 성자를 통해 드러난 아버지의 뜻은 그분의 구원 의지, 곧 사랑과 자비입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히브 10,5).

육화하신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마련해 주신 "몸"으로 율법에 따라 바치는 제물이나 예물을 대신할 전존재적 희생 제사를 봉헌하시지요. 임마누엘 예수님의 현존은 추상이나 관념이 아닌 생생한 실재였습니다.

복음 안에서도 우리는 임마누엘의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의 시골 처녀 마리아가 천사의 방문을 받습니다. "임마누엘"의 공동체적 의미를 익히 들어왔을 마리아는 자기 개인에게 부여된 "임마누엘"의 축복에 몹시 놀라며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은 "임마누엘"의 의미가 공동체적으로, 전 인류적으로 실현되기 위해 먼저 한 개인에게 주님께서 현존의 가능성을 타진하시는, 숨막히는 긴장의 찰나입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 1,35).

마리아는 성자의 거처가 되기 위해 성 삼위 하느님께 온전히 둘러싸여 하나를 이루는 신비의 순간을 맞이하십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특별한 방식으로 성령과 일치하신 성령의 신부, 성령의 정배시지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당신 백성과 함께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열망은 이렇듯 인간의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정결한 처녀로서 두려움도 일었겠지만,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가 두려움과 의혹을 이깁니다.


그녀는 지혜롭고 용감한 믿음의 소유자였지요. 마리아의 이 응답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 안에서 형체를 갖추어 현존하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엄청난 결단입니다.

예수님의 강생은 원죄 이후 타락한 세상을 회복시켜 주시려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 뜻을 실현하러 오셨고, 마리아는 그 뜻에 자신을 던집니다. 그렇게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현실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온 세상이 그분의 현존을 담고 있지요. 우리가 알아채건 못 알아채건 하느님의 뜻이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영의 눈으로 보면, 주님을 믿는 우리는 섭리라 부르고, 믿지 않는 이들은 우연이라 부르는 주님의 뜻이 도처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당신 혼자서 뚝딱 이루시지 않으십니다. 그 뜻이 세상에서 사랑이 되고 온기가 되고 희망이 되도록 우리를 참여시켜 주십니다. 협력이 필요하다며 보잘것없고 불결하며 빈틈 많은 우리에게 겸손되이 손을 내미십니다.

"얘야, 내가 너를 통해 세상에 현존하고 싶단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주님의 초대 앞에 섰습니다. 마치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혼돈과 고통의 시대에 무척 긴급하고 절박한 이 요청이 거의 호소에 가깝게 들립니다. 지금 우리게 필요한 건 두려움을 딛고 일어설 단순한 믿음과 결단입니다.

"Fiat Voluntas Tua!"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늘 교황님께서 함께 기도하자고 청하십니다. 성모님처럼,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청하며 하루종일 짬나는 대로 틈틈이 "주님의 기도"를 바칩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