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는 사순시기 중반을 넘어선 우리를 격려하는 말씀으로 열립니다.
"즐거워하여라 ...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 기뻐 뛰리라"(입당송).
우리나라와 전 세계를 뒤흔드는 전염병 사태가 이 사순시기와 함께 종식되기를 빌며 부활의 희망으로 한 숨 돌리라고 초대하시는 사순 제4주일 말씀 묵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복음에서는 한 눈먼 이가 예수님을 통해 빛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의 선천적 시각장애가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요한 9,3)이라고 하시면서 친히 이를 증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요한 9,6-7).
오늘 이 현장은 한처음에 펼쳐진 창조의 여정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빛이 생겨라"(창세 1,3) 하신 첫날의 창조에서,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신"(창세 2,6-7) 엿새날 창조까지가 예수님 말씀과 행동으로 한 순간에 실현됩니다. 게다가 그 날이 마침 안식일이었으니 지금 이 순간은 하느님 창조 업적의 축약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요한 9,7).
눈먼 이는 진흙을 눈에 바른 그 순간에 치유되지 않고 "파견된 이"라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은 뒤에야 비로소 눈을 뜹니다. "파견된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성자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파견된 분이시니까요.
결국 출생 때부터 유예되었던 그의 온전성이 성부께서 파견하신 분을 상징하는 실로암 못의 물로 씻은 뒤 회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화는 모든 인류가 원죄로 잃었던 창조 때의 온전성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하게 된다는 의미의 엄청난 사건이지요. 이렇게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을 통해 드러"난 것입니다.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요한 9,16).
그런데 소위 독실하다는 바리사이들은 치유된 이와 함께 기뻐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치유가 안식일에 일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사건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걸려 넘어집니다.
안식일 법은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과 구분하는 특별한 자긍심의 근원인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을 아무리 털어봐야 살인, 간음, 도둑질 등의 금지 계명에 저촉되지 않으니 그들로서는 가장 만만한 게 안식일 법이었을 겁니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9,39).
예수님께서 하실 심판이란 다른 게 아니라, 스스로 볼 수 있다고 자부하던 이들이 실상 눈멀었음이 드러나고, 볼 줄 몰라서 움츠러 살던 이들이 보게 되는 역전과 전복의 사건입니다.
사실 이 상당히 긴 태생 소경의 치유 이야기에서 놀라운 점이 있다면 이웃과 바리사이에게 말하는 눈먼 이의 응답들이 단순하지만 무릎을 칠 만큼 구구절절 옳고 정확하다는 점입니다.
그의 자기 계시는 명료했고(요한 9,9 :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신원을 역사의 유비 안에서 정확히 꿰뚫어 보았으며(요한 9,17 :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에 대해 올바른 신학적 견해를 지니고 있었지요(요한 9,33 :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경악할만큼 더욱 놀라운 점은, 소위 배웠다는 자들, 백성의 우위에서 하느님과 통교한다고 자부하는 바리사들이 자기들이 쌓은 신학과 지혜를 제쳐 놓고, 예수님의 기적이 무엇이 되었건 개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눈앞에 펼쳐진 진실에 눈을 감은 채 "아, 그건 됐고, 어쨌든 안식일이니까 무효다"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다 결국 그를 내쫓는 것으로 진실을 회피하고 맙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제1독서에서는 사람 시력과 주님 시력의 차이를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감히 주님의 시력을 갖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당장 드러나는 껍질만 전부인 양 받아들이느냐, 껍질을 뚫고 그 안의 본질을 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에페 5,8).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주님 안에서 눈 뜬 이로서 살아가라고 이릅니다. 빛이신 주님 안에 있는 우리는 빛의 자녀이고 또 주님처럼 보는 사람들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에페 5,9).
선과 의로움과 진실이 빛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주님의 시력을 가진 이는 선하고 의롭고 진실합니다.
오늘 복음 속 눈멀었던 이의 답변이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복잡하고 위선적인 바리사이들의 속내를 꿰찌르는 촌철살인의 힘을 보여주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겁니다. 그는 단순했고 사심이 없었으며 솔직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복음 환호송).
우리는 빛이신 주님의 빛을 받아, 볼 수 있게 거듭 창조된 이들입니다. 파견된 이, 예수님께 씻겨짐으로써 세속과 이기심과 욕정의 각막이 벗겨진 우리는 주님의 눈으로 보고 주님의 마음으로 보는 시력을 회복했습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요한 9,38).
올해 사순시기는 각 개인이 지나고 있는 터널 위에 인류적 재난 상황이라는 터널까지 덮씌워져 암흑이 더 짙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빛과 믿음이 더 절실한 때입니다. 그러니 우리, 이제 빛 한가운데 서서, 눈멀었던 이와 함께 한 목소리로 주님께 외칩시다.
지금은 새 창조가 필요한 시간. 우리는 이 터널에도 끝이 있음을 믿습니다. 이 고난의 시간이 지나면 먼동이 트듯 빛이 비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고통 가운데 생명이 움트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가난한 기도와 보잘것없는 선의가 세상을 밝히는데 보탬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사순 제4주일의 주시는 희망이니 앞당겨 기뻐해도 좋습니다. 오늘은 맘껏 기뻐하십시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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